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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Aug 15. 2024

파도 없는 잔잔함이 얼마나 감사했던 것인지

그 파도가 지나고 난 뒤에 우린 조금 더 바다와 친해지게 되었다

 다사다난. 쿠알라룸푸르에서 있던 시간을 생각하니 떠오르는 말이다. 여행을 포기할까 고민했던 시간들이 있었고, 타인의 넘치는 친절이 얼마나 감사한지 마음 깊이 느끼는 시간들이 있었다. 결론은, 두려움 때문에 포기할 수는 없다는 거다. 남편이 여행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그렇게 얘기했다. 두려움 속에서 살고 싶진 않다고. 그 말을 듣는데 나에게 생각보다 많은 두려움이 있었구나 싶었다. 어쩌면 그게 분명한 두려움의 모습이 아니라서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결정할 때, 생각보다 더 많이, 두려움 때문에 나아가지 못할 때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여행은 진짜 삶의 축약판 같다. 여행하는 시간 동안 업 앤 다운을 겪으면서 초고속으로 인생을 경험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어떤 결정을 할 때, 두려움이 원인이 되면 안 된다는 걸 이번에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다시 마음이 편안해졌다. 폭풍우가 한번 지나가고 나면 파도 없는 잔잔함이 얼마나 감사했던 것인지 온몸으로 느낀다.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건지. 


 숙소 근처여서 걸어서 자주 갔던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수리아 KLCC몰과 공원



남편이 쿠알라룸푸르에서 일 관련 미팅이 있어 나간 날이었다. 난 아들 둘을 보고 있었고, 저녁식사는 남편이 미팅이 끝난 후에 같이 하기로 했다. 그런데 원체 쿠알라룸푸르 교통체증이 심각해서 차라리 그 시간을 피해 출발하는 게 낫다는 메시지가 왔다. 그런가 하고 있는데 얼마 뒤에 몸이 안 좋다는 메시지가 왔고 그 이후로는 남편옆에 있던 같이 일하던 분에게 전화가 왔다. 남편이 상태가 좋지 않아서 응급차를 기다리고 있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고 우선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라는 내용이었다. 아, 그 분과 연락하는 내내 얼마나 초초하던지. 아이들이 바로 옆에 있어서 티는 내지 못했다. 응급차가 다른 건물로 가버려서 ( 실로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함), 그냥 본인의 차로 응급실로 가겠다는 연락이 왔다. 남편이 어지럼증이 너무 심해서 걸을 수 없어서 두 명의 남자분들이 남편을 회전의자에 앉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겨우 직장 동료의 차에 실었다고 한다. 암튼 그렇게 응급실에 도착하고 남편은 여러 번 토했다고 한다. 여러 검사를 하고, CT 스캔까지 하고,  전정기관염에 따른 Vertigo(심한 어지러움증)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현기증이 심해 몸을 움직일 수 없고 화장실도 못 갈 상태라서 병원에 며칠 입원해야 했다. 


아이들은 아빠가 왜 숙소에 돌아오지 않냐며 징징거리다가 첫째 아들은 울기 시작한다. 아빠가 보고 싶다고. 첫째는 워낙 감정적인 아이라, 아빠가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면 울고 불고 심각하게 굴 게 뻔해서 우선 일이 바빠서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대충 둘러댔다. 남편이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아이들이 면회를 오면 더 힘들 것 같다고 해서 면회도 못 가고, 직장동료가 보내주는 남편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늦은 밤, 소리 죽여 울었다. 아침부터 또다시 육아의 시작이다. 이 낯선 땅에서 아이들을 먹여야 하고, 놀려야 하고, 씻기고 재우는 일과에 반복이다. 잠깐 놀이터에서 놀아도 얼굴이 빨갛게 물들 정도의 더위라서 야외 활동도 하기 어려운 날씨이다. 그 날씨처럼 내 마음도 타들어 타는 며칠이었다. 오롯이 혼자서 감당해야 했던 타지에서의 그 시간들이 많이 버거웠다. 


그 와중에 숙소 체크 아웃을 하고 이동을 해야 해서 애들을 재우고 짐을 다 싸고, 남편 없이 혼자 다섯 개의 캐리어, 유모차, 아이 둘을 데리고 새로운 방으로 체크인을 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다른 숙소로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다행히 같은 아파트에 다른 방이 있어서 그걸로 예약했다. 그렇게 극기 훈련 같은 시간을 보내다가 남편이 퇴원을 하고 새로운 숙소로 돌아왔다. 와, 보자마자 눈물이 나왔다. 타지에서 혼자 입원해서 아팠던 남편이 안쓰럽기도 하고, 아픈데 병원에 찾아가지도 못한 마음이 미안하기도 하고, 이제 그나마 나아져서 퇴원할 수 있어 안도되는 마음들이 뒤섞여서 눈물로 흘러나왔다.


아프더라도 내 곁에서 아픈 게 나은 거란걸 그때 느꼈다. 아이들이 있어서 병원에 찾아가지도 못하고, 낯선 나라에서 떨어져 지낸 그 시간 동안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무 일도 없이, 별일 없이 지내는 시간이 별거 아닌 시간들이 아니라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들의 연속인지 말이다.






솔직히 남편의 입원으로 난 너무 놀라기도 했고, 또 그런 일이 있을까 봐 여행을 중단하는 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려했다. 그래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눴고, 그 과정에서 앞에서 언급한 두려움에 대한 마음을 깨달았다. 여행을 하던지, 일상을 살아가던지, 우린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사실이고 아플까 봐, 사고가 날까 봐 등등의 이유들로 어떤 중대한 결정을 한다면 결국 두려움으로 인한 결론일 테니까. 어떤 결정의 중심이 두려움이 되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른 이유라면 모르겠지만 두려움 때문이라면, 두려운 마음이 아예 없어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발 더 가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파도가 한번 스쳐 지나간 우리 가족은 단단해졌고, 끈끈해졌다.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 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잔잔함이 주는 하루의 지루함이 결코 더 이상 지루하지 않게 되었다. 인생은 결코 잔잔함만 선사하지 않는다. 그건 누구나 알고 경험하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종종 휘감아 치는 파도도, 멈춰지지 않은 것만 같은 사건들도 결국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진다. 쿠알라룸푸르는 우리에게 커다란 파도를 선사해 주었지만, 파도가 지나고 뒤에 우린 조금 바다와 친해지게 되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주로 실내활동 위주로 움직였다. 애들 데리고 아쿠아리움, 과학관, 실내놀이터, 실내 놀이공원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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