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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Aug 28. 2024

어쩌면 우리 뜻대로 되지 않은 게 나을 수도 있구나

예기치 못한 기대 이상의 무언가를 얻을 때도 많으니 말이다

 오키나와에 있는 나고에 도착하고 나서 바로 다음 날 걸어서 비치에 갔다. 공항 근처에 '나하'라는 지역에 있을까 '나고'에 있을까 고민하다가 나고로 결정했다. 공항에서 차로 한 시간 반 정도 이동해야 하지만 우리가 가고 싶은 관광지에 더 가까워서 여기에 있기로 했다. 후쿠오카는 약간 가을을 느낄 참이었는데 오키나와로 오니 다시 한여름이다. 해가 엄청 뜨겁다. 나고는 약간 휑한 느낌이 있기도 하다. 그래도 비치가 붐비지 않아서 좋고, 오랜 시간 도시에 있었으니 다른 분위기여서 괜찮은 것 같다. 오전에 비치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놀다가 비가 와서 점심도 먹을 겸 근처 일본식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점심 먹고 아이들이 다시 비치에서 놀고 싶다고 해서 1시부터 5시까지 비치에서 또 물놀이했다. 비치에 물고기가 많아서 수영하면서도 스노클링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게가 많아서 아들들이 너무 좋아했다. 게 잡고 풀어주기 무한 반복하면서 놀았다. 아들들이 최근 들어 더욱 싸우고 말을 안 들어서,  남편과 우리 둘 다 에너지가 바닥인데 그나마 우리 가족이 평안한 곳이 비치다.


나고에 있던 숙소에서 걸어갔던 비치, 점심 먹으러 갔던 이탈리안 식당, 숙소에서 본 선셋뷰



세계 3대 아쿠아리움 중에 하나인 오키나와 추라우미 아쿠아리움에 갔다. 수족관에서 고래 상어를 본 건 처음이었다. 엄청난 크기에 놀라서 보고 또 보게 되었다. 아이들은 여행하면서 여러 수족관에 갔는데, 이곳은 고래 상어가 정말 압도적이어서 더 집중한 것 같다. 둘째 아들은 원래 카레를 먹지 않는데, 여기서 고래모양으로 만든 카레밥을 처음으로 먹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포인트가 많은 곳이고, 야외에서 돌고래쇼도 하니 가족들이 오키나와에 방문한다면 들릴 만한 명소임이 분명하다.


나고를 숙소로 정한 이유 중의 하나, 추라우미 아쿠아리움



첫째 아들이 호주에 돌아온 지금도 종종 얘기하는 곳이 바로 오키나와의 차탄이다. 그중에서도 단연 아메리칸 빌리지이다. 여러 색깔의 빌딩들이 모여있는 이곳은 무슨 테마파크처럼 이쁘게 꾸며져 있고, 오션뷰를 볼 수 있어 특히 석양이 지는 시간에 산책을 하면 무슨 동화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건물 여기저기 피카추 캐릭터를 그려 놓았는데, 그걸 찾는 재미에 빠져 아들 둘은 매일마다 아메리칸 빌리지에 가자고 했다. 여러 레스토랑이 있고, 쇼핑할 수 있는 곳이어서 차탄에 있는 동안 식사는 거의 이곳에서 해결했다. 1년 동안 그 많은 곳을 돌아다녔는데 첫째가 제일 많이 언급하는 곳이 아메리칸 빌리지여서 신기하긴 했다. 나고는 이곳보다 더 한적하고 자연이 아름다워서 좋지만 대중교통이 거의 없어서 이동하는데 불편했다. 차탄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비치, 아메리칸 빌리지 같은 곳이 있어서 편했다. 아마 단기간 오는 거라면 가족에겐 차탄이 더 나은 옵션일 거란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제일 좋아했던 아메리칸 빌리지( 디포 아일랜드)

 

후쿠오카에서 갔던 교회에서 만난 친구가 추천해 준 '온나'라는 지역으로 데이트립을 갔다. 날씨가 너무 더우니 놀이터에서 좀 놀다가 징징거리는 애들을 비치로 데리고 가니 한결 낫다. 무더위에 비치를 이길 곳은 없다. 저녁은 너무 피곤해서 비치에 있던 식당으로 갔는데, 오키나와에서 먹은 음식 중 제일 맛있었다. 랍스터랑 스테이크 콤보가 한국돈으로 2만 5천 원 정도이다. 리서치하고 갔던 식당보다 더 맛있었다. 결국 계획 없이 간 곳이 제일 좋았다. 덤으로 식사하고 불꽃놀이까지 구경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이렇게 계획하지 않고 예약하지도 않은 곳이 더 좋은 때가 많다. 그런데 여행을 넘어, 우리가 사는 삶도 그런 것 같다. 아무리 계획해도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게 우리네 인생이고 그래서 더 예기치 못한 기대 이상의 무언가를 얻을 때도 많으니 말이다.


Nabee Beach, Onna


대학생 시절, 처음으로 해외를 가 본 곳이 일본이었다. 그 이후에 일본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했다. 복불복으로 뽑았었는데 정말 간절히 가길 원했었다. 휴학도 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 일 년을 해외에서 보내며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데 너무 실망스럽게도 떨어지고 말았다. 휴학한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하루라도 빨리 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에 신청만 하면 다 받아주는 호주 워킹 홀리데이를 선택했다. 그때 당시에는 어쩌면 젊은 객기였을 수도 있고, 아는 사람 없는 외국에 나가는 무모한 도전일 수도 있었지만, 계획에 없던 그 순간의 선택이 내 인생 전체를 바꾸었다. 휴학생활을 호주에서 보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 졸업을 하고, 결국 다시 호주 유학을 선택했으니 말이다. 호주에서 일하고,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며 예정에도 없던 호주 생활을 하게 되어버렸으니. 인생은 알다가도 모르고, 어쩌면 우리 뜻대로 되지 않은 게 나을 수도 있구나 싶은 적이 많다. 일본으로 갔다면 내 인생은 또 어떻게 변했을까 가끔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은 내 삶이 감사할 때가 더 많다.


나고 지역에 있었을 때 갔던 Agarie Beach.  그리고 근처를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허름한 내 스타일의 카페. 이곳 또한 우연히 발견해서 더 기분 좋았던 기억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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