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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Sep 03. 2024

가지지 못한 게 아니라 내가 가진걸 누리다 보면

다낭 길거리에서 만난 문구가 가져다준 생각

 도쿄에 머물면서 다음 여행지인 베트남에 가려고 E- Visa를 신청했는데, 비행기 타기 전날 오후까지 나오지 않았다. 비행기표 취소 수수료랑 호텔 취소 수수료 알아보고, 어쩔 수 없이 돈 날리고 비자 나올 때까지 도쿄에서 있으려고 마음먹었는데, 저녁 먹고 나서 혹시나 해서 체크해 보니 나 빼고 셋이 비자가 나왔다. 한국사람은 무비자로 45일 있어서 다행히 넷이 다 같이 올 수 있었다. 정말 마음 내려놓았는데 비자가 나와서 얼마나 좋던지 우리 넷이 탄성을 질렀다.  다행히 예약 취소하지 않고 비행기표, 호텔 다 사용할 수 있었다. 다낭에 가는 길이 참 드라마틱했다. 비행기 타고 둘째 아들은 처음으로 토하고 아팠지만 다음날 되니 또 멀쩡하다. 도착하고 다음 날,  남자 셋은 바다 가서 수영하고, 난 온몸이 쑤시고 피곤이 풀리지 않아서 수영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다낭은 날씨가 그다지 덥지 않고 바람도 불고 해서 찐덕거리지 않아서 좋다.



다낭의 마이안 비치와  다낭 대성당 (핑크 성당), 드래곤 브리지의 불쇼 너무 신기했다. 드래곤에서 불도 나오고 물도 나오는 쇼.



다낭에 와보니 왜 이곳이 인기 많은 줄 알겠다. 더워도 그리 무덥지 않고, 물가도 싸고, 비치도 있고, 친절한 사람들 때문인 듯하다. 약간 태국과 발리를 믹스한 느낌이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비치가 있고, 택시( 저렴해서 이용하기 부담이 없다)를 타면 쇼핑센터가 있고, 유명한 산이 있고, 도시가 있다. 베트남에서 도시와 해변이 같이 있는 도시는 흔치 않기 때문에 이 둘을 같이 경험하기 위해 다낭을 여행지로 정하는 게 이해가 된다. 호이안과도 그리 멀지 않아서 이동하기 편리하고, 호이안에 있는 놀이공원에도 방문하기도 편하다. 그런 여러 가지 이유들로 다낭에서 걷다 보면 부동산에 한글로 한달살이 매물들이 쓰여있는 것도 종종 봤다. 그리고 호주에서는 한국음식이 어마 어마하게 비싼데 다낭에 오니 한국 음식 맛 그대로 호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가격에 먹을 수 있느니 정말 신나게 한국음식을 자주 먹었다. 돌아가면 그렇게 못할 게 뻔하니 말이다.




다낭에서 한시간이면 차로 이동할 수 있는 호이안. 호이안의 놀이공원, 빈원더.  밤에 소원배 타는 걸 아이들이 정말 좋아했다.



계속 비가 와서 못 갔던 바나힐에 다녀왔다. 여행하면서 여긴 꼭 가야 해,라는 말을 별로 하진 않는다. 개인의 취향이 있고, 내가 좋은 게 상대방은 그저 그럴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다낭에 간다면 바나힐을 정말 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왜냐면 바나힐도 바나힐이지만, 거기 가기 위해 타야 하는 케이블카가 있는데, 그 뷰가 정말 멋지기 때문이다. 사진과 동영상으론 담긴 힘든 게 있다는 말을 자주 하지만 그 케이블카 경험이야 말로 그렇다. 세계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 신기하고 오묘한 색깔의 계곡물, 산들과 구름에 뒤덮인 광경에,  광대한 자연에 압도된다. 첫째 아들은 케이블카 타는 내내, 이렇게 어메이징 한 풍경을 볼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 지 모른다며 거의 30분 동안 초흥분 상태였다. 도쿄 디즈니랜드에서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암튼 이번 여행에서 첫째 아들이 최고의 반응을 보인 곳이 바로 케이블 카였다. 남편과 나도 감탄을 끊이지 않고 했던 곳이다. 케이블카에서 내려서 골든 브리지 구경하고, 다시 케이블카를 잠깐 타고 놀이공원으로 이동해서 여기저기 구경하고 놀이기구 타고 밤늦게 쇼까지 구경하고 알차게 보낸 하루였다.


바나힐 가기 위해 탔던 케이블카, 골든 브리지, 놀이공원


애들이 산을 좋아할까 싶어서 갈까 말까 고민하다 간 게 마블 마운틴이었다. 첫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거에 의미를 두는 편인데, 이 날은 자기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동굴에 가봤다며 아주 기뻐했다. 둘째는 처음에는 씩씩하게 들어가더니, 동굴에 들어갈수록 무섭다며 빨리 나가자고 했다. 나중에 왜 무서웠냐고 물어보니, 동굴 안에 있는 동상들이 진짜로 보였다고 했다. 하긴 둘째 나이( 여행할 당시 4살)에는 충분히 무서울 듯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산에 올라가면 비치도 보이고 산도 보이는 절경을 볼 수 있다. 올라갈수록 더 멋진 광경을 볼 수 있는데 하드코어 등산이 아니라 애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코스이다. 다낭에서 한 달 넘게 7주 정도 지냈다. 일주일만 예약하고 도착한 다낭이 마음에 들어 계속 연장하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마블 마운틴



다낭의 길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카페에 쓰여 있는 문구가 마음에 들어 적어 두었다.

"  Happiness isn't getting all you want. It's enjoying all you have."


그 말을 계속 꼽씹어 보았다. 정말 맞는 말인 거 같아서. 더 많이 가진 들 더 행복해질까. 내가 이미 가진 것들에 자족하다 보면 진정한 기쁨과 안정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세계 장기여행을 3번 하면서, 가진 걸 없애는 일도 세 번 해봤다. 가지고 있던 가구, 차, 물건들을 정리하며 소유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우린 무언가 가지려고 애쓰는데 사실 그게 없어도 꽤 살만한 세상인 걸 자주 깨달았다. 장난감이 없으면, 모래를 가지고 놀았고 옷이 많이 없으면 빨아서 또 입어도 사실 그리 나쁘지 않았다. 저마다 각자의 가치가 다르니 무엇이 낫다고는 말하는 게 절대 아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내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취양을 말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여행을 하면서도 쇼핑은 거의 하지 않았다. 소유에 대해선 2017년 디지털 노마드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미니멀리즘이 내가 추구하는 삶과 맞다고 생각했다. 가지고 있는 것, 그중에서도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가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보이는 것, 다른 사람의 인정을 추구하며 사는 삶과는 서서히 멀어져 갔다. 그래서 저 문구를 봤을 때 다시 한번 상기되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다고 해서 내가 원했던 기쁨이나 행복이 오는 게 아니란 걸 알겠어서. 그리고 내가 지금 가진 것, 내 눈앞에 펼쳐진 신비로운 바다 앞에서 그걸 온전히 누리는 게 내가 오늘 바로 찾을 수 있는 행복이란 걸, 다낭의 뒷골목을 걸으면서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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