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쯤 남편과 둘이 나트랑에 왔었는데 그때의 나트랑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다. 걷다 보면 문득 하와이와 비슷한 광경을 볼 수 있다. 다른 베트남 도시보다 길이 더 넓어서 유모차 가지고 다니기 편하고 더 깨끗하다. 나트랑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우리가 정한 숙소였다. 화려한 호텔은 아니었지만, 거실에서도 방에서도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마음에 들었다.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의 이름은 바로 골드 코스트 아파트. 우연인지 필연인지 지금 우린 노마드 생활을 정리하고 골드 코스트에서 정착했다. 그때만 해도앞으로 어느 나라에서 살 지 결정하지 못했었는데, 이건 골드 코스트에 살라는 의미 아니냐며 농담을 주고받았던기억이 난다. 인생은 이렇게 수많은 서프라이즈로 둘러 쌓여있는 듯하다.
오션뷰가 좋았던 나트랑 아파트 숙소. 아들이 만든 크리스마스 데코. 2023년의 크리스마스는 나트랑에서 보냈다
스피드 보트를 타고 빈원더 나트랑이라는 놀이공원에 갔다. 놀이공원이라고 하기엔 부족하다. 놀이기구, 동물원, 워터파크, 아쿠아리움, 비치까지 있는 곳이다. 어린아이들이 탈 수 있는 놀이기구도 꽤 다양하고, 놀다가 너무 더우면 워터파크에서 물놀이할 수 있는 옵션이 있다. 계속 동물원 가고 싶어 했던 둘째 아들이 너무 신나서 날아다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10시간 동안 이곳에 있었다. 둘째 아들은 저녁도 못 먹고 피곤해서 잠들어 버리고, 떠나기 전에 첫째가 화장실 가고 싶다고 해서 가다가 우연히 본 워터 파운틴 쇼가 진짜 멋졌다. 보트 타러 가다가 본 마지막 피날레 쇼까지 퀄리티가 높았다. 중간에 악의 세력을 연기한 연기자들이 관중들 가까이로 다가오는데 너무 무서워서 첫째 아들이랑 난 기겁해서 도망가기도 했다. 무서워도 끝까지 보고 싶다고 해서 마지막까지 보고 보트로 돌아갔다. 그다음 날까지도 피곤이 풀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너무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는다.
베트남에서 빈원더를 세 군데 갔는데 ( 호이안, 나트랑, 푸꾸옥) 그 중에서 제일 좋았던 나트랑 빈원더
호텔 키즈클럽 덕분에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정말 오랜만에 남편과 둘만 커피 마시는데 얼마나 기분이 이상하던지. 우린 독박 육아가 너무 익숙해서 이렇게 잠깐의 자유시간이 신기하면서 익숙하지 않았다. 이브 저녁에는 애들이 놀 수 있는 크리스마스 데코레이션이 있어서 애들이 한참 동안 솜뭉치를 가지고 너무 재밌게 놀았다. 아이들의 순수한 기쁨을 바라보는데, 그게 전달이 되어 내 마음도 다른 생각 들지 않고 그저 기쁜 순간이었다. 나중에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충분히 기쁘게, 온전히 즐거워하며 커갔으면 좋겠다.
작년 2023년에는 참 많은 일이 있었고, 다양한 경험을 했는데 결론은 모든 게 감사다. 여행하면서 남편이 병원에 입원했었지만 다행히 며칠 뒤에 회복했고, 아이들도 큰일 없이 잘 자랐고, 우리 가족이 다 함께 여러 나라를 보았다. 어쩌면 다시 하긴 힘든 그 여행을 뒤돌아 보니, 지치고 어려운 일들도 많았지만 그 흔하진 않은 경험을 선택한 것에 후회가 없다. 돌고 돌아 예전에 살았던 호주로 다시 돌아왔다. 시드니가 아닌 골드 코스트에 온 게 쉽지 않았지만 우리 다운 결정을 한 것 같다. 가족이나 친구 없이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생활이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시드니에 돌아갈 마음은 들지 않았다. 익숙한 게 쉬울 수도 있고, 새로운 곳에 다시 시작하는 게 힘들 수 있지만 말이다.
나트랑 비치. 쇼핑센터에서도 보이는 오션 뷰.
1년간 장기 여행을 하며 겪은 여러 경험들은 결국 또 다른 도전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주었다. 여행이 끝난 뒤에도, 우리 가족은 자주 여행에서 겪었던 일이나, 만났던 사람들, 가봤던 곳, 먹었던 음식, 등등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추억을 나눈다. 이건 우리 가족의 보물 상자 같다. 오롯이 우리 넷이 함께 울고 웃으며 만들어낸 추억들. 그 추억들이 우리를 더 가까이 만들고,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더 깊어져 갔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에 대한 열정을 만들어 줬다. 그래서 우린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들며, 새로운 세상을 하루하루 만나고 있다. 외로움도 있고, 어려운 마음이 꽤 오래 지속되었지만 버티다 보니 조금씩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7개월이 지나니 서서히 이제 골드코스트에 제법 적응하게 되었다.
골드코스트에서 지난 1년간의 여행을 정리하면서, 그 시간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그때보다 지금 더 깨닫는다. 늘 그렇듯 말이다. 실제 여행을 하면서는 아이들 육아와 온라인 공부 시키는 일, 장기 여행이다 보니 어디에 얼마나 머무를지를 결정해야 하는 바쁜 일정 속에 감사함보다는 지치고 피곤함에 끌려다니는 기분이 들 때가 꽤 있었다. 시간이 지나서야 제대로 보이는 게 있다.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여행이 지나야지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심지어 여행 중에도 난 어렴풋이 알았다. 지금은 이렇게 미칠 듯이 피곤하고 버겁지만 언젠가 이 날들을 그리워하는 시간들이 있을 테니, 현재에 집중해서 살자고 다짐했던 순간들이 기억난다. 나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들이 기억하는 그 여행의 추억을 들으며 이렇게 공유할 수 있는 기억이 있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느낀다.
호주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지역인 골드 코스트에서 정착하기로 하고, 처음에 에어 비앤비에 있다가 호텔로 며칠 동안 이동해야 했다. 부동산에서 우리가 원했던 집을 렌트할 수 있다고 전화 온 순간 호텔에서 남편과 아들들은 방방 뛰었다. 원체 골드 코스트에서 렌트를 구하기 힘든 시즌에 오게 되어서 이만저만 걱정이 많았던 차라 기적같이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의 여행은 마무리가 되었고, 새로운 '정착'의 시즌을 마주하게 되었다. 천천히 새로운 동네에 익숙해져 가고, 첫째는 새로운 학교에서 친구들을 새로 만들었고, 둘째는 처음으로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이제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종종 지나간 추억을 나누며, 사진을 보며 그때 그 시간들을 바라보며 함께 웃는다. 1년 동안 7개의 나라에서 아이들과 같이 우리도 성장하고 자랐다. 모험은 또 다른 모험으로 이끈다. 우리 넷이 함께 골드 코스트에서의 새로운 모험을 헤쳐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