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백써 #11, 물건 백 가지에 대해 써 봄.
누구나 그렇듯, 주말엔 보통 평일에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할 때가 많다. 여러 가지 집안일이나, 보고 싶었던 영화, 읽고자 했던 책 같은 것들도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아이들 운동화 세탁이 대표적인 일이다.
우리 집의 두 녀석은 신발을 한번 사주면 주야장천 같은 신발만 신는 습성이 있다. 주변에 또래 아이들도 비슷하다고는 하던데, 여하튼 여러 벌의 신발을 돌아가며 신는 어른들과 달리 늘 같은 신발에만 올라타다 보니, 세탁한 지 한 일주일 정도만 지나도 금방 꾀죄죄해지곤 한다.
군 생활을 계기로(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보통 생활관 내에 신발을 두다 보니, 선임들이 냄새가 나지 않게 운동화를 자주 빨라고 말했었는데, 당시 지시나 강요와 무관하게 운동화 빠는 일 자체를 내가 좋아했고, 전역 후로도 그런 성향이 이어지고 있다.) 운동화 세탁에 재미를 느끼게 된 나로서는 그런 아이들의 운동화를 볼 때면, 녀석들의 오늘내일 외출 일정을 얼른 확인하곤 잽싸게 양손에 두 켤레를 들고서 베란다로 향한다.
이때 필요한 도구는 모가 상해 세탁용으로 쓰는 칫솔과 새하얀 빨랫비누, 크기가 넉넉한 세숫대야가 전부다. 혹자들은 빨랫비누로 운동화를 빨면 운동화가 상하거나 누렇게 변색이 된다고 걱정들을 하는데, 사실 여러 가지 소재가 복합적으로 들어가는 운동화를 세탁하는 데는 빨랫비누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물론 스웨이드 소재는 제외) 간혹 누렇게 변색이 되는 건, 비누의 알칼리 성분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해당 성분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충분히 헹구지 않았을 때 발생되는 일이다.
대략적인 순서는 다음과 같다. 미온수를 세숫대야 한가득 받고, 우선은 운동화가 푹 잠기게 담가둔다. 때를 불리기 위해 5분 정도 담가두곤 하는데, 이물질이 많이 묻었거나 지우기 어려워 보이는 깊은 흔적들이 보이면 비눗물을 살살 풀어두기도 한다.
입욕을 마친 운동화는 대야에서 꺼내 우선 초벌로 솔질을 한다. 특히 신발 안쪽과 바닥에 많이 끼어 있는 모래나 돌 알갱이를 꼼꼼히 빼주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정도 제거가 되면 아까 때를 불렸던 물에 신발을 한 번 헹궈준다. 이후에는 칫솔 끝에 빨랫비누를 묻히고, 신발 표면이 상하지 않게 적당한 세기로 운동화 안팎을 닦아준다.
갑피와 밑창 부분을 말끔히 닦아 준 후에는 운동화 안쪽으로 칫솔을 넣어 마무리를 하고, 세숫대야에 새로 받은 물에 두세 번 정도를 충분히 헹궈준다. 아이들 운동화에는 잘 없는 편이지만 깔창과 끈이 있다면 마찬가지로 미온수에 그것들을 따로 불려뒀다가 앞에서 이야기한 과정들을 반복한다.
세탁을 마친 후에는 운동화들을 세탁기에 거꾸로 뒤집어 넣고, 가장 간단한 탈수 코스를 돌려서 물기를 살짝 빼준다. 변색이 걱정되면 바람이 잘 통하는 응달에 말리는 것이 좋고, 습기가 많은 계절에는 운동화 안에 신문을 구겨 넣어둔다.
보통 한 켤레에 20~30분 정도가 소요되는데, 베란다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녀석들의 운동화를 이리저리 닦고 살피다 보면, 흥미로운 순간들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두 녀석의 기질과 성격이 저마다의 운동화에 묻어나 있음을 발견할 때가 그렇다.
하교 후에 동네를 누비며 온갖 놀이를 즐기는 딸아이는 늘 신발코 부분이 조금씩 구겨져 있다. 그리고 곳곳에 끼어 있는 흙먼지와 돌 알갱이도 많은 편이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지면과 직접적으로 닿는 바닥이나 여기저기 치이기 마련인 신발 앞부분이 아니라, 운동화가 발목을 감싸주는 부분들인데, 그쯤에는 늘 거뭇한 자국과 노란 흙먼지가 소복하게 내려앉아 있다.
이런 물적 증거들을 바탕으로 나는 이분께서 발목에 힘이 들어가는 과격한 동작을 많이 하셨고, 정확한 연유까지는 모르겠으나 놀이터나 운동장에서 놀다가 이따금 신발을 벗고 무언가 색다른 활동을 시도하셨음을 추론할 수 있다. 이처럼 딸아이의 신발이 품은 흔적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누구보다 열심히 뛰고, 앉고, 쭈그리며 놀았던 초등학교 3학년의 신나는 한 주가 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 같다.
딸아이의 운동화가 일정한 패턴을 파악하기 어려운 ‘다이내믹’한 흔적을 보여준다면, 아들 녀석의 운동화는 청렴하면서도 고결한 인상을 풍긴다. 그렇다고 그의 운동화가 어떠한 때와 냄새도 발견되지 않는, 무색무취의 상태라는 것은 아니다. 녀석도 초등학생답게 운동화 여기저기에 뛰어논 흔적과 자국들이 남아 있다. 다만 운동장에서 노는 것보다는 실내 활동을 좋아하시고, 딸아이의 즉흥적 사회활동과 달리 특정 소수와의 긴밀한 관계를 추구하는 이분의 성품답게, 지나친 흙먼지나 불쾌감을 자아내는 얼룩 따위는 그의 운동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편이다.
매일 같이 학교와 집, 태권도장을 성실하게 오가며 그 흔한 스마트폰조차 사용하시지 않는 나의 아들은 그 침착하고 줏대 있는 성격처럼 매주 마주하는 운동화마저도 늘 일정하고 차분한 상태를 나타낸다. 특히 신발 뒤축을 함부로 구겨 신거나, 아무 바닥에나 함부로 앉아 시간을 보내지는 않는구나, 하는 것쯤은 아들의 운동화를 잠깐만 살펴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신발 바닥에 떡볶이 국물 자국 비슷한 것이 발견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설핏 물어보니 하굣길에 어쩐 일로 혼자서 간식을 사 먹었다며, 수줍게 말하는 모습이 자못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세탁 후 말려두었던 운동화 두 켤레가 하얗고 뽀송해진 것을 아이들에게 내보이며, 그것들을 현관에 내놓을 때다. 그리고 아빠가 자그마한 운동화를 빠느라 이리저리 낑낑댄 걸 아는지 모르는지, 깨끗해진 운동화를 냉큼 신고서 학교로, 놀이터로, 태권도장으로 뛰어나가는 녀석들의 뒷모습을 보며, 혼자서 괜스레 흐뭇한 기분을 느끼곤 한다.
부모라는 존재는 물리적으로 ‘함께하지 않아도’, 자식과 이미 많은 부분을 ‘함께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지저분해진 운동화에서 녀석들의 지난 시간을 떠올리고, 오늘은 또 괜찮고 즐거웠는지를 생각하며, 새로 맞이할 내일들이 멀끔해진 운동화와 함께 훨씬 더 신나고 행복하길 기원하면서 말이다.
내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세상의 무수한 부모들이 그러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