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백써 #12, 물건 백 가지에 대해 써 봄.
“에취.”
옆자리 앉은 후배의 재채기 소리에 쭉 내려앉았던 거북목이 슬그머니 펴진다. 당사자의 안색을 살피니 코끝이 발그레하다. “감기 걸렸어요? 괜찮아요?”라고 말하려다가, 정적을 깬 것만으로도 몹시 민망해하는 그이의 표정을 보고선 하려던 말을 거뒀다.
지금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에는 보통의 사무실이라면 흔히 찾아볼 수 있을, 일명 파티션이라고 불리는 칸막이가 없다. 이는 회사 대표님이 내세운 나름의 원칙 때문인데, 그는 각자의 영역을 물리적으로 분리해 서로 얼굴조차 쉬이 보기 어렵게 만드는 파티션의 폐쇄성을 힐책하며, 파트너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디자인업의 특성상 본인의 사무실만큼은 개방된 구조와 서로 간의 대화, 대면이 원활한 환경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을 심심치 않게 이야기하곤 했다.(그러나 그 실효성과는 무관하게, 자신이 보기에 심미적으로 좋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라, 직원들은 추측하고 있다.)
물론 주변의 같은 업종 회사들이나 창의적인 분위기를 강조(주체와 객체의 엄연한 구분이 필요하겠지만)하는 일련의 기업들을 방문해 보면, 칸막이가 없는 사무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회사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서로에게 열린 구조가 주는 효과에 수긍하고, 그러한 환경에 무던히도 잘 적응하고 있는 동료들을 나 또한 주변에서 꽤 많이 보았다.
하지만 그렇다손 치더라도, 타인과 나의 자리를 가능한 한 명확하게 구분하는, 기존의 사무실 환경이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NO 파티션’이 마치 반바지와 슬리퍼 차림으로 마트 계산대 줄 바로 앞자리에서 엊그제 알게 된 사람을 마주치는 듯한, 낯설고 거북한 기분을 들게 한다는 걸, 직접적으로 경험해 보지 않은 이들도 어느 정도는 예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내 경우만 하더라도 현재의 회사에 오기 전까지 근무했던 거의 모든 회사가 각자의 자리마다 칸막이를 두곤 했다. 업종이 무엇이고, 어떤 것을 만드는 곳이며, 나 개인이 맡은 업무가 무엇이든지 간에, 사무직을 바탕으로 하는 곳이라면 으레 자리마다 칸막이가 놓여 있었다.
그러던 내가 지금의 사무실에 처음 왔던 날,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이 칸막이가 없는 풍경과 그로 인해 상대적으로 훨씬 가깝게 느껴지는 다른 사람과의 거리였다. 예전 회사였다면 옆 사람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려면 칸막이 위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야 했겠지만,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눈동자만 돌려도 거기에 사람이 있고, 그 사람 또한 고개를 움직이지 않고서도 충분히 나를 자신의 시야에 놓아둘 수 있는, 이를테면 비유 하나 없이 문자 그대로 ‘긴밀(緊密)’한 상황과 처지가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거기다 자리마다 놓인 데스크도 일반적인 사무용 데스크보다 비교적 작은 편이었는데, 세련된 화이트톤으로 통일된 그것은 보기에는 충분히 유려하였으나, 체구가 작은 편이 아닌 내게는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다수가 본체가 필요 없는 맥(Mac)을 사용했기에 그 정도 크기의 데스크가 적당한 편이기도 했고, 남직원이 극히 드물었던 당시 인력 구성상 나와 같은 애로를 토로하는 직원도 드물었던 걸로 기억한다.(결국 나는 가능하면 기존처럼 모니터 앞에 문서를 펼쳐놓고 일하기보다는, 문서 고정판이나 전자파일 등을 이용해 가급적 데스크 위를 비워두고서 업무를 보는 쪽으로 습관을 바꿨다.)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대표님에게 칸막이를 두지 않는 이유를 직접 듣기 전에도 이러한 개방의 구조가 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차츰 느낄 순 있었다. 우선 보통의 사무실이 풍기는 삭막함이 한결 덜했다. 당시 회사 사무실 곳곳의 각종 가구와 조명, 인테리어는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상당히 공을 들인 느낌이었는데, 이러한 수려하고 섬세한 구도 위에 자리마다 빽빽이 칸막이를 두는 것은 그 누가 상상을 해보더라도 절로 고개가 저어지는 일임이 분명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닌 것이, 동선 면에서도 효율이 컸다. 대개 다른 사무실에선 타 부서를 찾아가려면 애먼 책상 몇 개와 파티션 사이사이를 비켜 지나가야만 했는데, 서로를 가로막는 것이 없다 보니 상대방을 찾아가는 일이 한결 간편했다. 덕분에 기획자와 디자이너, 포토그래퍼가 때마다 한자리에 모여 갑론을박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생겨났다.
또한 음성을 가로막는 장벽도 거의 없다고 여겨져서, 제3자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는 선에서 맞은편에 앉은 누군가와는 그냥 목소리만으로도 소통을 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자리를 직접 찾아가지 않더라도 자리 주인의 부재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걸려 오는 전화도 많고, 서로를 호명할 일도 잦은 업무 특성상 제법 장점이라 할 만한 부분이었다.
끝으로, 적당한 유대감과 어느 정도의 파트너십이 잘 작동한다는 전제하에서는 시선만 돌려도 서로가 보인다는 점이 이로움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에 대한 긍정적 관심을 유발하고, 그것이 같은 업무와 비슷한 고난을 겪는 각자에게 응원과 지지, 조언과 도움으로 이어져 어떤 시점부터는 상당히 괜찮은 팀워크를 형성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 적도 있었다. 적어도 내게는.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언급한 모든 장점들이 상황과 입장의 차이에 따라, 고스란히 거울처럼 반전돼 형언할 수 없는 단점이자 고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잘 아실 거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같은 평일의 개념 안에서도 금요일과 월요일이 서로 영원한 평행선을 그리듯, 본디 세상은 모순적이고 부조리하다는 점을 덧붙이고 싶다.(따라서 나는 여러분의 귀한 시간을 위해서라도 앞서 이야기한 것들을 단점으로 치환해 한 번 더 이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코 귀찮아서가 아니다. 이미 해당 부분을 읽으면서 반감을 느꼈을 모든 분들은 내 문장 하나하나에 저마다의 귀중한 생각의 각주를 달아 놓으셨을 테니.)
하여 나는 우선 오늘 내가 몸소 겪은 긍정적인 경험과 과정들만을 나열하고자 했다. 어쩌면 내가 지나치게 좋은 것만 기억하려고 하는, 어떤 면에서는 균형감을 몹시 잃고 비틀거리는 못된 낙천주의자라 욕하더라도 수긍할 생각이다.
한편으론 내 개인적인 기질과 소양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소싯적부터 무대 위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해왔고, 지하철역을 비롯한 공공장소에서 독서나 작문을 하는 것이 꽤 익숙했던 나로서는 사람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서 무언갈 하거나, 몰입에 빠지는 게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기에, 그러한 환경에 비교적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고 자평을 해본다.(물론 이건 몹시도 개인차가 크다고 생각한다.)
회사의 근무 환경을 오롯이 근로자가 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닐뿐더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동의를 구할 수 없다는 점은 잘 알지만, 그래도, 칸막이 없는 사무실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물리적으로 늘 열려 있다고,
그게 소통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말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집중하고, 각자가 상대에게 의미 있는 아이디어와 의견을 내놓기 위해선 저마다의 시간이 조금씩은 필요하다. 일의 종류와 밀도에 따라서는 고립과 고독이, 분리와 단절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한 최소한의 거리감도 없이 마냥 서로에게 열려만 있다면, 우린 어느새 진정한 의미의 대화보다는 서로에게 구색을 맞추기 위한 일종의 연기만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가 지향하는 개방의 구조에 대해서 비단 부정적인 감정만을 품고 있진 않다. 나 역시 그와 같은 환경에 적응을 잘했고, 앞서 이야기한 장점들을 바탕으로 동료들과 유의미하고도 좋은 시간들을 보냈다고 자부한다.
다만 세상의 모든 사물이 그러하듯, 어떤 물건의 쓰임이 눈에 드러나는 것에만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칸막이는 서로를 나누고, 각자의 자리를 구분하는 역할도 하지만, 때로는 개개인의 사적인 시간과 공간을 보호해 주고, 타인의 시선과 업무의 긴장으로부터 잠시나마 우리를 해방시켜 다시금 일할 기운과 의욕을 되돌려주기도 한다.
그리고 채 1평도 되지 않는 그 한 칸이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펼치고 생각을 유영하는 우주요, 그나마 한숨 돌릴 수 있는 둥지, 때로는 후련한 종착역이자 두근거리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는 걸, ‘사무실’에서 일을 해본 이라면 누구나 알 테니까. 추가로, 소통에 진심인 사람은 칸막이가 아니라 벽을 세워 놓아도 결국 할 말은 하고, 나눌 생각은 나눈다.
만약 자신이 속한 조직이 무언가 불통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면, 그건 칸막이 때문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무거운 위계와 말은 하라면서 막상 듣지는 않는, 독선과 자기기만이 사무실 어딘가에서 뚝뚝 흐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칸막이를 무조건 폐쇄의 상징으로만 여기지는 말길, 말로만 ‘열린’ 사무실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자못 진지하게 권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