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백써 #13, 물건 백 가지에 대해 써 봄.
퀴즈 하나 내보겠습니다.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자동차 번호는?
[ □□□ □□□□ ]*
네, 축하합니다.
바로 생각이 났다거나, 별다른 메모를 보지 않고서도 답을 떠올렸다면,
당신은 아마도 꽤 효자이거나, 현재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혹시 한 칸으론 부족하신 거라면, 지나친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으니 한 대만 적어주세요.
만약 내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순순히 실토하건대 나는 모른다. 대신 그것을 기억하고 다니던 어떤 시절들은 떠오른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지역명까지 같이 표기돼 있던, 그 초록색 번호판에 새겨진 번호를, 누가 쿡 찌르듯 물으면 곧바로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외우고 다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내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가정마다 보통은 차가 한 대였고, 그마저도 대개는 아버지나 가장 역할을 하는 분의 소유이기 마련이었다. 여러 대도 아니고 딱 한 대여서인지, 집 전화번호도 간신히 외우던 코흘리개에게도 자동차 번호는 그나마 기억하기 쉬운 축에 속했던 듯싶다. 나뿐만 아니라, 차종은 정확히 몰라도 자기 아버지 자동차 번호 네 자리쯤은 쉽게 기억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았다.
나의 기억 속 아버지의 첫 차(그것이 아버지의 첫 번째 자동차인지는 모르겠다. 정확히는 어린 내가 승차감을 기억하는 첫 차라고도 할 수 있겠다.)는 기아에서 나온 회색 프라이드였다. 앞서 말했다시피 지금은 그 차의 차량 번호는 까맣게 잊어버렸지만, 그때는 골목길 어귀에서 놀다가 저 멀리서 프라이드 한 대가 다가오면, 기억하고 있던 그 번호를 알아보곤, ‘아버지 오셨구나’ 하며 반가운 마음에 달려 나가곤 했다. 한편으론 동네 어딘가에서 프라이드를 마주치면, 번호를 확인하고선 ‘아, 우리 아버지 차가 아니네’ 하고 실망감을 느낀 기억도 드문드문 떠오른다.
제일 좋았던 기억은 귀갓길이다. 학교를 마치고 이 골목 저 골목을 친구들과 누비다가 각자 저녁 먹으러 흩어지고선 아쉬운 마음에 혼자 터덜터덜 걸어오는데, 집 근처 담벼락에서 익숙한 번호를 단 프라이드를 발견하면 ‘와, 오늘 아버지가 일찍 오셨구나’ 싶어 금세 너른 걸음으로 대문을 향해 뛰어갔다.
그래서인지 프라이드는 내 기억 속에서 언제나 명차다. 아마도 아버지의 프라이드 뒷자리에 앉곤 했던 그 꼬꼬마 시절의 행복이 내게는 별스러울 정도로 좋았나 보다. 도시로 이사 와서 어떤 친구가 길에 세워진 프라이드를 보고 ‘쪼그만 똥차’라 불렀을 때, 우리 아버지 차가 아니었음에도 마치 그 이름처럼 내 ‘자부심’을 욕보이는 듯한 기분이 들어 기분이 몹시 나빴다. 얼마나 안락하고 넉넉한지, 타보지도 않았으면서 뭘 안다고 저러는 거지, 하고 속으로 되뇌면서.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아버지의 차는 프라이드에서 스포티지로, 또 엑센트와 소나타로 바뀌어 나갔다. 그리고 그와 함께 바뀐 자동차 번호판은 시절마다 조금씩 그 명도는 다르지만, 언제나 나의 뇌리에 일정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사춘기를 거침에 따라 아버지의 차를 타는 나의 표정은 어린아이의 해맑은 미소에서 뾰로통하고 과묵한 얼굴로 확연히 바뀌었지만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버지의 자동차 외에도 때마다 기억 속에 적어두었던 자동차 번호판들이 더러 있었다. 갓 스물이 돼 운전면허를 따고선, 달뜬 기분으로 드라이브에 나섰던 내 친구들의 자동차(정확히는 그들 부모님의 것이었을), 서툰 주차 실력 탓에 군데군데가 흠집은 나 있었지만, 기타와 스네어 드럼을 들고 버스를 타는 것보다는 훨씬 안락했던 밴드 맏형의 마티즈, 합주나 작업 중에 농땡이 피우다가 저 멀리서 등장하면 심장이 얼어붙는 듯했던 군악대 행보관님의 트라제까지.
지금은 민망할 정도로 새하얀 기억들이 돼버렸지만, 분명히 그때만큼은 내 삶에서 제법 요긴하고, 때로는 상당히 중요했던 숫자와 글자들이었다.
현재의 내가 기억하는 자동차 번호는 뭐가 있을까…. 거의 드물지만, 자주 보는 이들의 것은 편의를 위해서라도 기억에 남겨 두는 것 같다. 동승을 할 일이 잦거나, 일을 위해 어딘가를 같이 갈 일이 많은 사람들, 이를테면 카페보다는 갓길이나 주차장에서 마주하게 되는 사람들. 회사 대표님, 직장 동료들, 그 밖에 현장에 동행하곤 하는 협력사와 외주사 관계자분들이 대표적이겠다. 이런 분들의 차량 번호는 특정 시기에는 매우 또렷하게 기억이 되지만, 업무나 용건이 끝난 뒤에는 잔바람에 날리는 고운 먼지처럼 이내 사라지게 된다는 걸, 차량 번호를 외우면서도 예감하곤 한다.
그러고 보니 내 차의 번호를 외우고 다니는 이들도 있다. 요즘 내가 모는 자동차의 번호판은 퇴근 때 종종 손에 들고 들어가는 검은색 비닐봉지처럼, 우리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반가운 기호가 되어주고 있다. 아이들은 함께 어딜 갈 때면 나보다 먼저 주차장에서 차를 찾아내고, 이내 차량 번호를 외치며 그리로 뛰어가곤 한다. 열 살 무렵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쯤에서 이 글을 읽는 당신께, 한번 물어보고 싶다.
혹시 지금 당신이 기억하는 자동차 번호가 있는지, 그리고 비록 번호는 기억나지 않더라도 그 희미한 기억 너머로 떠오르는 어떤 흐뭇한 얼굴들이 있는지를.
만약 있다면, 그이에게 안부 연락이라도 한번 해보길 권한다. 할 말이 마땅치 않다면 '그때 그 고물차 아직 잘 굴러가냐'는, 실없는 농담도 괜찮을 듯싶다. 그렇다. 그 사람은 생각보다 당신 삶에서 꽤 중요한 누군가일 수도 있다.
지금은 잊었지만, 그 시절 내가 분명 기억하고 있었던 모든 자동차 번호판들과, 기름값 한 번 제대로 보태준 적 없음에도 기꺼이 나를 자기 차에 태워주었던 그 모든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은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