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물건백써 #3, 물건 백 가지에 대해 써 봄.

by 숲일생활


어릴 때 이사를 참 많이 다녔다. 대부분이 아버지의 전근으로 인한 것이라 집뿐만 아니라 사는 지역도 옮겨야 했는데, 그래서인지 유년 시절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아버지 차 뒷좌석이나 이삿짐 트럭 조수석에서 차창 너머로 보이던 낯선 동네 풍경들이 생각난다.


새 보금자리에 도착하기 전, 어린 나는 으레 눈에 들어오는 동네 모습에서 그곳의 대략적인 상황과 분위기를 유추하느라 바빴다. 누나와 내가 새로 가게 될 학교는 어딜지, (너무 붐비는 곳은 싫어했기에) 놀이터는 곳곳에 충분히 많이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했던) 비디오 대여점이 동네 어디에 있는지 등 열 살 내외의 내 인생을 좌지우지할 만한 것들을 탐색하느라 눈길은 늘 창문 밖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실마리가 되어 주었던 것이 간판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프랜차이즈가 많지 않던 시절이라 새로운 동네에 가면 새로운 간판이 보였다. 때때로 이름도 업종도 생소한 간판이 보일 때면, 장거리 이동에 지친 엉덩이가 무색하리만큼 마음 밑바닥에서 호기심과 모험심이 피어올랐다. 그렇게 나는 간판을 통해서 새 동네에 대한 첫인상과 기대감을 큐브 맞추듯 완성해 내곤 했다.



성인이 된 지금은 출장이 잦은 편이다. 식구들과 방방곡곡을 떠돌았던 기억이 싫어서, 가장이 되고서는 가급적 한동네에 오래 사는 방식을 택하곤 있지만(지금은 2025년이다. 내가 옮기고 싶다고 해도 옮길 수 있는 시대가 아님을 밝힌다.) 하는 일이 그런지라 많을 때는 평일 내내 타지를 갈 때도 있다. 미팅과 컨설팅, 인터뷰와 프레젠테이션이 주를 이루고, 클라이언트의 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탓에 행선지만 들렀다 급하게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나의 간판에 대한 탐색 욕구는 지금도 여전해서, 어떤 지역을 처음 가거나 그 동네에서 식사라도 하게 되면 머무는 시간 동안에는 그곳의 간판들을 유심히 살펴보곤 한다.


전국 단위의 프랜차이즈가 많아졌고, 건물 외관이나 인테리어 스타일이 비슷한 경우도 많아서 요즘은 그 풍경이 다들 엇비슷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동네에만 존재하는 가게도 더러 있고, 그 지역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묻어나는 풍경들을 간판을 통해서 목격할 수가 있다. 특히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특출난 작명의 상호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한데, 브랜드 네임을 짓는 일을 하는 내가 무릎을 ‘탁’ 치게 되는 순간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그것이 양인지 맛인지는 모르겠지만 압도적 크기로 ‘두배루’라 쓰여 있던 중국집 간판, 멀리서 ‘쓰담’이라 되어 있길래 채소와 과일을 쓰다듬듯이 귀하게 여긴다는 말인 줄 알았으나 앞에 가서 봤더니 ‘쓰러 담아’의 줄임말이었던 청과물 가게, 이름만 보고도 탈모 케어 전문 미용실임을 알아차렸던 ‘헤어나올 수’ 등 브랜드 네임을 개발한답시고 독일어 사전이나 뒤졌던 나의 과거를 부끄럽게 만드는, 충격적이고도 명쾌한 해답들이 대한민국 곳곳의 간판들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이런 업무적인 성찰 외에도 간판이 안겨주는 동네의 밑그림이란 것이 있다. 예컨대 요즘 지방 소도시나 읍면 단위의 고장을 찾으면 압도적으로 많이 보이는 간판은 안경점과 임플란트, 그리고 보청기다. 편의점이나 슈퍼는 띄엄띄엄 있을지언정, 실버케어와 관련된 가게들이 상대적으로 훨씬 많다. 길거리에 사람도 몇 보이지 않는 동넨데도 심지어 가게 숫자가 적은 편도 아니다. 그런 풍경을 볼 때면, 60대도 젊은이라고 부른다는 요즘 시골의 상황이 더욱 와닿는다.


몇 해 전만 해도 새로운 매장이 잔뜩 들어섰던 동네에서 수년간 정비하지 않아 색이 바랜 간판을 마주할 때는 그곳의 쇠퇴를 예감하기도 한다. 반면에 젊은 부부와 아이들이 많이 살 것으로 보이는 신도시에서 영어로 된 상호와 형형색색으로 꾸며진 간판들을 볼 때면 그 지역에 걸고 있을 사람들의 기대와 조바심, 불안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리고 간판, 하면 잊을 수 없는 가게가 또 하나 있다.


지난해, 집 앞의 슈퍼가 문을 닫았다. 요즘 보기 드물다는 아파트 상가에 딸린 자그마한 슈퍼였다. 10평 남짓한 크기에 온갖 물건들을 다 파셨고, 나는 길 건너 편의점을 두고도 아이들 간식부터 생필품까지 다양한 것들을 사러 꽤 자주 그곳을 찾았다. 가게 정리 기간에는 조금 더 자주 갔었는데, 그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25년 정도를 운영하셨고, 코로나 때 문을 닫을까 싶었지만 조금 더 버텼고, 최근에 자녀가 결혼을 하면서 이제는 마음 편히 가게를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짤막하게 말씀하셨지만 결코 함축될 수 없는 시간들이 느껴지는 그런 이야기였다.


그 슈퍼의 간판은 귀가하는 나를 가장 먼저 반기는 손짓이었다. 어쩌다 일찍 퇴근해서 ‘OO마트’라는 글자가 멀리서 보일 때면, 아이들이 게 눈 감추듯 맛있게 먹던 감귤을 또 한 봉지 사 가야지 싶어 슈퍼로 발걸음을 옮겼다. 늦은 시간, 아파트에서 한참 먼 곳에 차를 대고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던 날에는 불 꺼진 간판 앞에서 오늘 하루 내가 무언가 놓치고, 어쩐지 보통의 삶에서 많이 늦고 뒤처진 것 같다는 기분을 느꼈다. 가게 내부가 완전히 철거되고 간판만 덩그러니 남았던 날, 마지막 날 또 인사를 나누자던 슈퍼 사장님과의 약속을 결국 지키지 못한 나는 퇴근한 새벽녘에 그저 그 간판만 멍하니 바라보다 집에 들어왔다.


현재 그 자리에는 미용실이 들어섰다. 상호는 외국의 도시 이름을 차용한 것으로 보이며, 입구에는 영문 레터링으로 디자인된 금빛 간판이 반짝거리고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동네에는 언제부턴가 미용실이 꽤 많아졌다. 미용실 자체는 해당 지역의 인구가 적지 않다는 걸 나타내기도 하지만, 하나 건너 하나씩 있는, 다수가 밀집된 1인 운영 미용실들은 정기적인 파마가 필요한 여성 고령층이 많은 동네라는 점을 방증한다고 한다. 30여 년 전, 동네에 아이들이 너무 많아 초등학교 수업을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눠서 할 정도였던 우리 동네가 이제는 차츰 변하고 있음을, 간판들이 들려주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을 듣는 것이 좋아서, 나는 오늘도 동네를 산책하며 간판들을 살펴본다. 어제 내게 소중했던 것들이 곁에 조금 더 오래 남아 있고, 앞으로의 우리를 설레게 할 무언가가 그곳에 걸려 있기를 바라면서.

keyword
작가의 이전글주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