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백써 #4, 물건 백 가지에 대해 써 봄.
책상 위에 놓인 달력을 바라본다. 새해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4월 중순이다. 시간의 쏜살같음에 놀라다가, 녹음(綠陰)으로 가득한 달력 그림에 어쩐지 민망한 기분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만개한 벚꽃잎이 무색하게 며칠 전까지 인근 지역에는 눈이 왔고, 엊그제는 반팔을 입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무더위가 하루를 가득 채웠다. 분명 4월이라는 계절에 어울릴 거라 여기며 저 그림을 얹었을 텐데, 애석하게도 싱그러운 푸른 숲을 묘사한 그림은 계절에 대한 사실적 재현보다는 우리가 기대했을 4월의 어떤 모습을 남겨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꼭 책상 위가 아니더라도, 우리 집에는 방마다 달력이 걸려 있다. 달력 만드는 일 또한 업무의 하나인 내 직업의 영향이 큰데, 감사하게도 회사의 가장 크고 오래된 광고주가 10여 년 동안 매년 달력 디자인 의뢰를 주고 있다. 그 덕분에 연말이면 늘 내년 달력을 잔뜩 받아다가 우리집은 물론 부모님과 처가댁까지 두루 나눠드리며, 미리 새해 인사를 드리곤 한다.
방마다 달력이 있다곤 하지만 가족마다 그 쓰임새는 각기 다르다. 첫째인 아들 녀석은 새 탁상달력이 나오면 내가 직접 책상 위에 그것을 올려주곤 하는데, 사실 한두 달쯤 페이지를 넘기지 않는 날도 있을 만큼 달력 사용에 무딘 편이다. 초등학생이 직장인처럼 그날그날 일정을 달력에 적어두고 확인하는 일은 드물 테니, 이해는 한다. 한편으로는 그런 모습이 외부의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잘 집중하고, 조용히 자기 할 일을 알아서 하는 편인 녀석의 기질과도 무관하진 않아 보인다.
물론 시간관념은 철저한 편이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 등교 준비를 하고, 결코 지각도 하지 않는다. 어른도 한 번쯤은 허둥대는 날이 있기 마련인데, 매번 한결같이 차분한 모습으로 손목시계를 슬쩍 한 번 확인하곤 학교와 태권도장으로 나선다. 어쩌면 녀석의 머릿속에는 이미 하루하루의 일정과 동선이 명확하고 간결하게 정리돼 있을지도 모르겠다.
반면에 딸한테는 달력이 노트이자 낙서장이요, 다이어리이자 버킷리스트다. 요즘은 비교적 덜하지만, 자기 방이 처음 생겼을 때는 책상 위에 탁상달력, 거울 옆에는 벽걸이 달력, 침대 머리맡에도 다음날 일정 표시를 위한 달력을 달라고 했을 정도로, 스케줄러로써 달력을 활용하는 데 진심인 편이었다.(종종 이렇게까지 표시를 해둘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했는데, 그것이 숙지나 실천과는 별개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로는 일종의 유희라고 생각하고 그냥 두었다.)
휴대전화를 사주기 전까지, 딸아이가 쓰는 달력에는 (아마도 아내의 영향으로 보인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일자에 동그라미가 쳐졌고, 가족들의 생일과 방학, 소풍과 같이 학교에서 예정된 주요 일정들이 표시돼 있었다. 그리고 특히 본인의 생일과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가족 여행 일정 등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하트와 별표가 그려져 있었는데, 이게 뭐냐고 물어보면 천연덕스럽게 ‘그것도 몰라?’ 하고 되물어 보는 녀석의 얼굴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눈을 찡긋거리며 ‘그래서 뭐 사 줄거야?’를 덧붙이는 개구진 모습도.
아내는 본인의 일터나 안방의 책상, 그리고 부엌 한편에 둘 탁상달력을 요청하곤 하는데, 달력을 쓰는 모습을 볼 때면 그 꼼꼼하고 섬세한 성격을 새삼 실감한다. 보통 아내가 쓰는 달력에는 주요 일정이 일목요연하게 표시되어 있고, 매일 아침 새로 맞이하는 일자에는 동그라미가 쳐진다. 가족의 공동 일정이나 개개인의 주요 일정도 표시가 잘 돼 있어서, 아내가 쓰는 달력은 우리 가족을 위한 게시판과 같다고도 할 수 있겠다.
전역 날짜를 기다리던 시절 외에 달력에 원을 그리는 일이 거의 없었던 나로서는 아내의 습관이 신기하기도 했는데, 육아와 직장 일을 병행할 때도 본인이 하루에 하고자 하는 공부와 독서, 각종 시험과 자격증 취득에 관련된 일정들을 기어이 소화해 내는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에게 하루라는 시간은 마치 어떤 거대한 성을 쌓기 위해 하나하나의 단단한 벽돌을 굽는 ‘최소의 단위’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달력에 쳐진 매 하루의 동그라미는 그 성실하고도 치열한 단위의 표상처럼 여겨졌다.
계획적인 성향은 나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계획을 실행하는 건 그와 또 별개이다. 부푼 기대와 희망을 달력에 마음껏 적어볼 순 있겠지만, 하지 않을 일을 장황하게 표시해 두는 것이 때로는 자기기만이 될 수 있다.(한때 아침 조깅을 한 날은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리는 습관을 가진 적이 있다. 그러나 동그라미를 그리는 기쁨보다 그리지 못한 날에 느끼는 죄책감이 더 커져 버려서 금방 그만두었다.) 적어도 아내는 그런 기만을 범하지 않는 사람이고, 기왕 적은 목표와 계획들을 실천하고 실행하는 데 능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육체적인 체력은 턱 없이 모자랄지 몰라도, 그것을 상쇄할 만한 충분한 마음의 체력을, 아내는 가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몸이 좋지 않고, 다른 일정도 겹겹이 생겨서 달력을 만들 때 동료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 이전에는 해마다 몇 달간 교정을 위해 봤던 달력을 보고 또 보는 게 일상이었다. 날짜와 요일, 기념일과 24절기, 간지와 음력이 제대로 표시되었는지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올해가 아니라 다음 해와 어울릴 작가로 선정한 이의 작품들을 월별, 계절별로 분류하고, 그림들이 각 월에 맞게 잘 들어갔는지, 표기된 작품 정보에 이상이 없는지를 몇 번이고 대조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해마다 해왔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와, 이런 기념일도 있구나’, ‘아, 내년에는 공휴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네’ 같은 말을 하며 기대와 아쉬움이 묻어나는 대화를 동료들과 나누었다.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면, 달력 표지에 들어갈 문구를 썼다. 대부분 올해 삽화 작가 선정의 동기를 밝히며, 이 달력을 받는 이들이 어떠한 새해를 맞이했으면 좋겠다는, 편지 같은 글귀를 적었다. 아주 직접적인 메시지까지 담을 수는 없었지만, 직전 해에 사회적으로 좋지 않은 일이 있었거나, 무언가 침울한 일들이 있었던 해에는 특히나 문체와 내용에 신경을 많이 썼다. 몇 줄 되지 않는 문장에 조금이라도 더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담아보려고 몇 번을 썼다 지웠다. 어쩌다 글이 너무 사변적으로 흘러갈 때는 ‘아, 맞다. 이거 지금 내 일기장 아니지’하며 짐짓 들뜬 문장들을 지그시 눌러버리곤 했다.
알다시피 벽걸이 달력의 표지는 보통 받자마자 뜯어지는 지면이다. 나도 그걸 알지만, 한 해 내내 그 누구보다 달력을 오래 들여다본 동료들의 수고스러움이 떠올라서라도, 한 자 한 자 항상 공들여 적고자 했다. 마치 내가 그것을 성의 없게 적으면 누군가의 1년이 불행해질 것만 같은 불안을 느끼면서 말이다.(감사하게도 부모님은 항상 여벌의 달력을 달라고 하신다. 내가 적은 글귀가 담긴 벽걸이 달력들은 첫 장이 뜯어지지도 않은 채 부모님 서재에 고이 모셔져 있다.)
시계가 곧 시간이 아니듯, 달력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1년의 시간을 오롯이 담지는 못한다. 우린 그저 달력을 통해 날짜를 확인하고, 흘러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들을 셈할 뿐이다. 달력을 만드는 나조차도, 이따금 달력 위에 적힌 날짜들이 종종 덧없이 느껴진다. 손에 잡히지 않는 시간들을 눈에 보이는 숫자로 적어두고, 확인하고, 기억하려 애쓰지만 흘러간 시간 앞에서 마주하는 건 언제나 후회와 아쉬움이다.
미래는 또 어떠한가. 때로는 예정된 날짜 앞에서 기대나 희망보다는 걱정과 불안이 앞서기도 한다. 더군다나 생계를 위해 살아가는 대다수의 날들은 오르막길 같은 하루를 그저 질끈 감은 눈으로 황망히 넘겨 보내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런 시간들 속에서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몇 월 며칠인지 중요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눈길이 머무는 곳에 달력을 두고 산다. 날씨도 계절도,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고, 목표와 달리 토요일이었던 어제에 에세이 한 편도 채 완성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하루가 지나고 달이 바뀌었음을 달력을 통해 실감하는 순간들이 싫지 않다. 가끔은 30여 칸에 놓인 숫자들에서 나의 무능과 무력함을 읽을 때도 있지만, 다음 장으로 넘겨 마주한 숫자와 여백들에서 조금 더 괜찮은 나를 고민하는 일이 아직까지는 지겹지 않은 모양이다.
하루가 한 주가 되고, 몇 주가 모여 한 달을 이루듯이, 부족하고 어설픈 내 인생을 온전히 채우는 게 꼭 오늘의 나일 필요는 없을 테니까. 마찬가지로 내가 누군가의 부족한 하루를 채워주고, 그들이 너절해진 내 하루를 소복하게 채워줄 수도 있음을, 나는 내 가족과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배웠고, 지금도 배우고 있다.
참고로 탁상달력은 첫 장을 뜯어낼 필요가 없다. 치열한 한 해를 보내고 다음 해의 달력을 받아 든 사람 중 극히 일부는 예전 달력을 버리기 전, 거기에 적힌 메모들을 거꾸로 넘겨보며 지난 시간을 반추하는 경우도 있을 거다. 그리고 맨 앞장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 적은 그해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읽게 되는 사람이 아마도 한둘쯤은 있지 않을까. 그런 사람을 혹시라도, 몹시나 드문 확률로 만나게 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싶다.
“그거 제가 적었고, 실은 저 자신한테 해주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어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