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백써 #2, 물건 백 가지에 대해 써 봄.
“조금 아플 수 있습니다. 힘 빼시고요.”
아무 느낌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다지 아프지는 않았다. 간호사 선생님께 고맙다고 말하며 바지춤을 추스르고 주사실을 나왔다. 수납을 하고, 처방전이 나오길 기다리며 대기실을 몇 걸음 서성이자 그제야 엉덩이 한쪽이 욱신거린다. 아, 간호사 선생님은 여기까지 내다보셨구나.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난 주사를 좋아한다. 부디 오해는 하지 말길 바란다. 여기서 주사란 어떤 음성적인 것과는 무관하다. 우리가 보통 병원에 가서 맞는, 질환의 치료와 예방을 목적에 두고 약액을 몸에 넣는 기구, 팔에도 맞고 엉덩이에도 맞는, 바로 그 따끔한 주사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통증에서 묘한 쾌감을 느끼는 취향을 갖고 있다고 고백하는 건 아니다.(물론 통증과 쾌감이 반응하는 뇌의 신경통로가 같다는 것쯤은 부스러기 같은 상식을 통해 알고 있다.)
주사를 좋아하게 된 이유를 되짚어 보면, 어린 시절 기억이 슬며시 떠오른다. 누구나 그렇듯, 어릴 땐 병원이 무서웠다. 그런 나를 어머니가 병원에 데리고 가실 때면, 동네를 나와 병원에 가는 발걸음 자체가 무겁고 두려웠다. 열이 펄펄 끓고, 직전까지도 구토를 했는데도 이상하게 병원을 가려고 하면 조금 나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은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다.
아무튼 그런 일렁이는 마음을 따뜻한 어머니 손을 잡고 진정시키곤 했는데, 그때마다 어머니는 괜찮을 거라고, 가서 진료를 잘 받으면 얼른 나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병원에 도착해 접수를 하고, 땀에 젖어 쫄쫄해진 내 머리와 수척해진 얼굴을 어머니가 쓰다듬어 주시면, 기분이 한층 더 차분해지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겸허히 진료를 기다리게 되곤 했다.
호출을 받고 어머니와 병실에 들어가 의사 선생님께 진찰을 받은 후엔, 으레 그렇듯 항생제 주사가 필요할 것 같다, 수분 손실이 심해 수액을 맞아야 할 것 같다는 소견을 듣곤 했다. 열 살이 채 되지 않은 나를 보며, 아직 어린데 아이가 아픈 주사를 맞아도 괜찮을지 의사 선생님이 물어보시면, 어머니는 내 얼굴을 보고 무언의 동의를 구한 뒤,
“네, 얘가 참을성이 많아요. 지난번에도 울지 않고 주사를 잘 맞았답니다.”
하고, 확신에 찬 대답을 하시곤 했다. 사실 여기서 기억이 다소 혼란스럽다. 실제로 내가 언젠가 의젓하게 주사를 맞고 어머니에게 놀라움을 안겨드린 건지, 아니면 불안하고 두려운 나의 마음에 선의에 찬, 일종의 암시를 던져줌으로써 내가 나 자신이 참을성이 많다는 확신과 몰입에 빠지게 하신 건지 말이다.
선후는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지만, 확실한 건 자랑스레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그 목소리가 나는 참 좋았다. 워낙 아플 때 주사를 맞으러 가면 바늘이 얼마나 굵든 그게 아픈지 제대로 느껴지지도 않았지만, 주사실이나 회복실을 나와 잘 참아준 게 대견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어머니의 손길에서 어떤 안도감을 느꼈고, 그게 뭔지는 몰라도 내가 어머니를 도와드렸다는 기분이 들어, 이를테면 어떤 부푼 보람과 성취감을 얻곤 한 것이다.
이런 에피소드는 나의 성장과 함께 점차 쌓여가서, 나는 어느새 최소한 병원에서는 참을성이 무척이나 많은 아이로 자라났다. 입천장에 기묘하게 돋아난, 과잉치라 부르던 생니를 뿌리째 뽑을 때도, 학교 계단에서 넘어져 발목이 돌아가 한의원에서 대침을 맞을 때도, 시골집 마루에서 미끄러져 바깥으로 돋아난 대못에 미간이 찔려 병원에 업혀 갔을 때도,
그리고 레이저 수술이 도입되지 않은 시골 외과병원에서 당시 남자아이들의 숙명과 같은 어떤 수술을 차디찬 메스의 느낌과 함께 받을 때도, 그러한 참을성은 빛을 발했다.(사실 더 기상천외한 일들도 있었지만, 어쩐지 부모님께 죄스러운 기분이라 그만하도록 하겠다.) 어머니 또한 그 모든 과정에 질책보다는 잘 참아냈다는 응원과 격려를 보내시곤 했다.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어머니는 여전히 그런 이야기들을 하신다. 잔병치레는 많이 없었지만 이따금 아프고 다쳤었는데, 그때마다 병원에 가서도 울지도 않고 잘 참아줬다는, 어머니 입장에서는 그저 고맙고 다행스러울 그런 일들을 내 아이들 앞에서 늘어놓으신다. 나는 다소 민망스러울 따름이지만.
세상에는 그런 관계가 있다. 내 몸이 아니고, 내 아픔이 아닌데도 그걸 참아주고 견뎌주는 것에 감사하게 되는. 그리고 그 모습에 어쩐지 미안함을 느끼게 되는 사이 말이다. 내가 주사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 아마 누군가에게 끼친 걱정이 내가 맞는 주사로 인해 조금은 줄어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따끔함이 앞으로는 나 자신을 잘 챙겨서, 누군가를 걱정시키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던져주는 것 같다.
한편으론 몸을 함부로 하고, 건강을 관리하지 않은 건 사실 나 자신일 텐데, 그걸 고치는 일에 쓰이는 무언가가 아프다 한들, 공손히 받아들여야지 어쩌겠냐는 생각도 든다.
얼마 전 병원에 갔을 때는 의사 선생님이 몹시 아픈 주사를 처방해 주셨으면, 싶었다. 아마 제때 제대로 건강을 챙기지 못한 나 자신에게 주는 나름의 벌이자, 왠지 아픈 만큼 효과가 좋을 것 같다는 미련한 기대 때문이었으리라. 그날도 욱신거리는 엉덩이를 매만지며 병원을 나와 생각했다.
‘주사 맞을 일이 없다면 좋겠지만, 그래도 주사 정도라서 다행이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