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

물건백써 #1, 물건 백 가지에 대해 써 봄.

by 숲일생활


“그냥 비누 쓰면 애들 피부 다 상한다니까. 그건 오빠 같은 강철 피부나 쓰기 편한 거라고.”



아들과 함께 욕실을 나오는데, 아내의 걱정 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요는 일반 비누의 강력한 세정력을 염려하는 것인데, 저자극 비누나 어린이용 비누가 아닌 이상은 피부의 수분이나 보호막을 지나치게 앗아 간다는 거다.


“알겠어, 나만 쓸게. 걱정 마.”



우리 집은 욕실마다 비누가 있다. 그 비누를 쓰는 건, 대부분 나다. 난 비누를 좋아한다. 언제부터였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는 것이, 사실 내가 어릴 땐 무언가를 씻는 도구는 비누가 거의 유일했다. 손도, 얼굴도, 머리도, 온몸 구석구석을 비누로 씻었고, 가끔 빨랫비누가 없으면 급한 대로 세숫비누로 걸레도 빨고, 양말도 빨곤 했다. 그런 시절을 살았던 내게 비누는 어떤 선택지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품이자 청결의 독보적 아이콘 같은 느낌이다.


지금은 다들 계면활성제를 MSG 못지않게 불편해하지만,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비누 하나로 거품을 잔뜩 내 온몸을 개운히 씻고 나오면 세상 바랄 게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손을 씻을 때는 핸드워시, 세수할 때는 폼클렌저, 머리 감을 때는 샴푸를 쓰고, 그 나머지의 몸 곳곳을 씻을 때는 바디워시라는 걸 사용한다. 우리의 이 섬세하고 소중한 피부를 위해 사용처마다 각기 다른 세정제를 쓰는 것인데, 사람마다 이것을 쓰는 순서나 횟수 같은 것도 다르다고 한다. (목욕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언젠가 이러한 씻는 순서와 방식에 대해 몇 가지 주제를 정해서 주변 지인들을 모시고 난상 토론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여하튼 이런 변화 때문인지, 욕실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근래에 어쩌다 누군가의 집이나 사무실, 그리고 공중화장실을 가봐도 예전이라면 비누가 놓여 있었을 자리가 대부분 비어 있다. 설령 비누가 놓여 있다고 하더라도 쓰는 이들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드물게 마주하는 비누들은 대부분 누가 봐도 오래도록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척박하게 말라 있거나, 갈라진 틈으로 먼지가 끼어 있기 마련이다.


그런 비누를 볼 때면 조금 서글퍼진다. 쓰임을 잃고 시들해지는 모든 물건들이 그렇겠지만, 녀석의 처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분명 처음엔 향긋한 냄새에 뽀송한 기운을 뽐내며 돌잔치 방석에 앉은 아기 마냥 비누 받침 위를 사뿐히 올랐을 텐데. 이제는 찾는 이도 많지 않고, 끝까지 쓰이지도 못한 채, 몹시도 어중간한 형태로 자리만 지키고 모습이 어쩐지 애달프다.



비누를 사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가 비누를 좋아하는 건, 나의 투박한 몸을 온전히 하나의 도구만으로도 말끔히 씻을 수 있다는 간편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비누가 가진 물성 자체 때문이기도 하다. 어떨 때는 딱딱하고, 어떨 때는 젖고 물렁물렁해지기도 하는, 마치 내 마음과도 닮아 있는 그 물건의 성질이 때때로 나를 골똘히 생각에 잠기게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비누를 사용하려면 우선 비누를 만져야 한다. 방금 사용한 것이 아니라면 다소 말라 있을 그것을 손에 쥐고, 거품을 내기 위해 물을 묻혀야 하며, 시동이 걸린 거품을 더욱 키워내기 위해 손과 손 사이에 비누를 두고 성실히 비벼야 한다. 비누를 직접 쥐고 몸을 씻는 타입이라면 손에 쥐어진 비누를 통해 몸 곳곳의 굴곡과 두께를 직간접적으로 느끼며 피부 위를 쓸어내고 매만져야 한다.


샤워 타월을 쓴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행여나 거품이 한쪽에 뭉쳐지지 않도록, 섬유 곳곳에 비누를 갖다 대 샤워 타월과 공들여 마찰시켜야 한다. 다 쓰고 난 후에는 나를 씻기느라 설거지 후의 앞치마처럼 물기와 거품으로 푹 젖어 있는 녀석을 살짝 물에 씻겨주고, 촉촉해진 모습이 꼭 나와 닮았다고 생각하며 비누를 다시금 받침 위에 올려놓는다.


이처럼 비누는 모든 과정에 접촉이 뒤따른다. 접촉이 뒤따른다는 건, 사용할 때마다 그것의 크기와 촉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단지 어떤 느낌만 받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체감하게 해 준다. 나를 씻기느라 하루하루 작아지는 비누의 형태를 느끼다 보면, 그것에서 내가 보낸 지친 하루를 목격하기도 하고, 때로 잔뜩 메마른 비누 표면에서는 무신경하고 게을렀던 지난 나의 며칠을 돌아보기도 한다.


대수롭지 않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몸을 씻는 다른 무언가들은 보통 통에 담겨 있다. 용기가 투명하거나 직접 손으로 들어보지 않고서야 얼마를 썼는지, 이것이 새것인지, 내가 최근에 이것을 언제 썼는지조차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비누는 언제나 자신을 스치고 간 시간을 드러내고, 우리가 매만지거나 외면한 흔적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욕실을 나와 집안 곳곳을 둘러보니, 비누와 같이 흔적이 남아 있는 물건들도 있고, 처음 샀을 때와 같아 보이는 것들도 적지 않았다. 꼭 물건이 아니더라도, 비누 같은 존재가, 비누 같은 사람들이 세상에 많았으면 좋겠다. 말끔히 씻어버렸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끝난 후에 수고했음을 느끼게 해 주고, 다음번에 다시 만났을 때 그간의 마음씀씀이가 묻어나 자연스레 고마움을 표하게 되는, 그런 관계, 그런 풍경, 그런 시간들이 말이다.



아, 끝으로 비밀 하나 고백하자면, 아들과 목욕탕을 갈 때 우린 베이비로션 외에는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는다. 목욕탕 비누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나의 여정에 아들도 동참해 버렸다. 그리고 이 글을 쓴 이상, 어쩐지 다음 목욕탕행부터는 집에 있는 어린이용 바디워시를 챙겨가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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