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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사람 Apr 06. 2020

우리 뇌가 미술을 이해하는 방식

 미술과 환원주의

동시대 예술에서 아름다움은 더 이상 관심 주제가 아니다. 나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지각의 가능성 탐구"가 동시대에 예술이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음악을 듣고 있으면 그 기괴함과 난해함 때문에 상당히 불편하다. 현대음악은 선율의 아름다움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음악은 음악의 기초 요소들, 그 구성과 배치에 따른 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런 음악을 들을 때 청자의 뇌는 분명 어떠한 반응을 하게 된다. 그것은 어떤 기억에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감정적 반응과 같은 경험일 수도 있다. 그렇게 청자는 아름다움을 넘어선 다양한 지각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현대 그리고 동시대 예술을 환원주의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이다. 현대의 예술은 더 이상 예쁘고, 듣기 좋고, 보기 좋기만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놀드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 - Piano Concerto, Op. 42 1. Andante, 시간이 있다면 현대음악 한번 들어보자!


환원주의(reductionism)란 무엇일까? 환원주의는 모든 대상이나 개념이 보다 더 단순하고 근본적인 것들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는 철학이나 관점이다. 도대체 미술과 환원주의가 무슨 관련이 있을까? 미술에서 회화 작품도 결국은 점, 선, 면, 색, 빛 등의 기초 조형요소로 구성되어있다. 미술에서 환원주의는 이런 시각적 형태를 구성하는 기초 조형요소를 분해하고 재조합하여 관람자로 하여금 시지각의 경험을 극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미술에서 환원주의는 작가와 관람자 두 가지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관람자 입장에서는 작품에서 환원된 어떤 요소가 어떤 지각과 감정 반응을 이끌어 내는지 분석할 수 있고,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작품을 더 잘 감상할 수 있다. 작가 입장에서는 관람자로 하여금 그러한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요소가 무엇인지 좀 더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연구하고 실험함으로써 더욱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음악이 청각 예술이라면 미술은 시각 예술이다. 미술 작품을 통해 경험하는 시각적 자극에 우리 뇌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뇌는 우주에서 가장 복잡하고 정교한 기계장치이지만 그 기능들을 환원해 보면 생각보다 단순한 메커니즘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컴퓨터의 CPU가 트랜지스터라는 아주 단순한 회로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노벨 생리 의학상을 수상한 뇌과학자, 에릭 켄델의 저서인 <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서 이런 주제를 잘 소개해준다. 이 책은 미술과 과학을 환원주의라는 공통분모로 꿰어 설명하는 무척 흥미로운 책이다. 이 책은 미술책 이라기보다는 과학책에 더 가깝다. 그래서 오히려 미술에 대한 새로운 관점들을 접하게 해 준다.


먼저 미술에서 활용되는 뇌의 메커니즘을 살펴보자. 시지각의 반응에서 뇌는 크게 두 가지 핵심적인 동작을 한다. <상향 처리>와 <하향 처리>이다. 상향 처리(bottom-up processing)는 특별한 노력 없이 자동으로 처리되는 시지각의 메커니즘이다. 가령 윤곽선을 생성하여 배경과 대상을 분리하고 인식한다거나, 얼굴을 인식한다거나 하는 동작은 학습된 기억을 통해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 반면 하향 처리(top-down processing)는 살면서 했던 경험과 학습된 기억 또는 감정을 결합해 무언가를 인지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하향 처리과정에서 상향 정보를 보완하여 재구성한다. 결국 우리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상향 처리-> 하향 처리로 재구성하여 인식하는 것이다.


또한 뇌의 시각계는 목적에 따라 두 종류의 경로가 있다. <무엇 경로>, <어디 경로>이다. 무엇 경로는 모양, 색, 정체, 움직임, 기능 등을 파악하여 인식된 이미지가 무엇인지 알아낸다. 어디 경로는 운동 깊이, 공간 정보를 처리하여 대상이 세계에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한다. 이 두 가지 경로가 상향 처리와 하향 처리를 거쳐서 통합되어 대상을 최종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던 추상미술은 이런 뇌의 메커니즘을 잘 활용한 시각 예술이다. 추상미술은 구상미술과 다르게 대상을 재현하는데 그 목적이 있지 않다. 대상을 기초 조형요소로 환원한다. 그래서 미술은 묘사가 아닌 해체이며, 재현이 아닌 표현이 된다. 과거의 구상미술은 뇌의 상향 처리에 더 크게 의존한다. 하지만 추상미술은 뇌의 하향 처리, 즉 학습에 기반한 기억과 감정적 처리과정에 더 크게 의존한다. 그때 관람자는 과거와 달리 더욱 능동적으로 작품에 참여하게 된다. 관람자로 하여금 과거와 다른 뇌의 영역을 사용하게 만드는 추상 미술은 분명, 대상을 똑같이 묘사한 구상미술과는 다른 일상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할 낯설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한다. 이런 뇌의 메커니즘을 통해 관람자는 현대의 추상미술을 통해서 무언가를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술사에서 이 추상성은 어떻게 발명되고 발전해 왔을까? 그것에 따라서 우리 뇌는 어떻게 반응할까? 현대의 추상화는 크게 두 가지 해방을 기초로 역사가 진행되었다. <형태로부터 해방>, <색채로부터 해방>이다. 색과, 형태 빛과 공간을 환원하여 미술을 새롭게 정의되었다. 작품이 재현 대상이라는 외부환경과의 관계에서, 작품 자체와 작가의 관계로 변화했다. 쉔베르크, 칸딘스키, 몬드리안부터 시작하여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앤디 워홀까지 그 미술가의 시각 탐구 역사를 보면서. 나는 그 미술가들의 작품과 그 작품을 대하는 인간의 뇌에 대한 분석을 보면서 미술가는 과학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각 요소를 활용하여 새로운 미술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과학자 말이다. 그들은 우리 뇌가 형상을 규정하는데 쓰는 규칙들을 파악하고 추론하려고 노력하였으며 그 결과물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물론 그것이 현대의 신경 과학적 분석 방법론에 의해서는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작업실에서, 스튜디오에서, 길거리에서 그들만의 독특한 관점과 철학과 방법론으로 미술과 시지각의 한계를 찾고, 그 지평을 넓히도록 연구하고 탐사했다.


환원주의적 접근법은 현대 미술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도구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질문이 하나 떠오른다. 환원주의는 동시대 미술에서도 여전히 유효할까? 미술은 과거부터 현대 까지는 시각적 가능성의 탐구였으나, 동시대 미술은 보다 사회적, 시대적 담론메시지와 주장이 담긴 시각 예술이 되었다. 동시대 미술은 보는 것을 넘어 읽는 것이다. 따라서 시지각에 대한 환원주의적 접근 방식은 동시대 미술에는 크게 적합한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색채의 해방, 형태의 해방, 새로움의 탄생 등 미술은 그동안 새로움이 등장하여 시지각의 가능성을 탐구했다. 그러나 동시대에 와서 끊임없이 시각적 새로움이 등장하는 미술은 이제 막을 내리지 않았나 생각된다. 시각적 새로움의 탄생이 더 이상 새로운 미술을 만들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추후에 발행할 글에서 다뤄 보려고 한다.


Water-Shot, 1961, Morris Louis
몬드리안 보다 먼저 추상화를 그린, 아놀드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 The red gaze, 1910





References:

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 에릭 캔델, 프시케의 숲


사진(출처):

Composition No. VII, 1913 by Piet Mondrian

Water-Shot, 1961, Morris Louis


The red gaze, 1910, Arnold Schoen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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