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선택

2006.9.15

by 물구나무서기


갈색나무 이젤 위에 하얀 캔버스를 올려놓는다. 방구석에 있던 흔들의자를 이젤 옆자리에 옮겨놓고, 부엌에 가서 포크와 유리접시 하나를 챙겨 온다. 물감과 붓은 기본이다. 됐다. 이제 그림 그릴 준비는 다 끝났다. 흔들의자에 몸을 눕힌다. 눈을 감고 흔들의자의 삐걱거리는 소리를 자장처럼 듣는다. 슬슬 졸려온다. 의자 옆으로 쭉 뻗어 내린 오른팔. 오른손에는 포크가 들려있다. 졸리다. 의식이 희미해진다. 잠이 온다. “쨍그랑”손에 쥐고 있던 포크가 밑에 준비해놓았던 유리접시 위로 떨어졌다. 몽롱한 상태에서 붓을 집어 들고 캔버스에 방금 전의 몽롱함을 그대로 옮긴다. 몽롱한 기억이 희미해지면 다시 포크를 손에 쥐고 잠을 청한다.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다.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주로 사용했던 그만의 방식이다. 그림을 그리려면 주제와 색감을 선택하고, 캔버스 어느 곳에 먼저 붓을 댈지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는 그림을 구상하는 과정부터, 그리기 시작하는 결과의 선택까지 모든 것을 선택하지 않는다. 하나의 그림의 완성되면 그 작품은 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것이지만 그림에 그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흔적은 없다. 인위적인 판단이 배제된 그림이다. ‘살바도르 달리의 판단’이 아니라 ‘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작품이다. 정말 ‘살바도르 달리’가 그렸다.


선택이 배제된 초현실주의적 기법은 현실에 더욱 가깝다. 이런저런 고민, 판단 등을 걷어낸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무수한 고민들을 맞닥뜨린다. 그러면서 조언을 구하고 가끔은 고통스러워하기도 한다. ‘신택’이 나 자신의 모습을 결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에서 살바도르 달리가 선택한 것은 역으로 선택을 배제하는 방법이었다. 현실을 초월하는 것이 진정한 자신의 선택이라 여겼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수많은 ‘선택의 과제’ 앞에 갈등하고 있다. 이념 논쟁, 세대갈등, 지역감정. 이 모든 것들이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며 사람들에게 선택의 고민을 안겨준다. 그리고 갈등하고 고통스럽게 만든다.‘대한민국의 선택’이 쉽지 않다. 그래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시기하고 싸운다. 여기서 진정한 ‘대한민국의 선택’이 되기 위해선 ‘선택’은 잠시 걷어내고 ‘대한민국’만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이 ‘살바도르 달리의 선택’이 아니라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이었던 것처럼 대한민국도 선택사항에 집중하지 말고, 그 선택의 주체자인 대한민국을 생각하고 미래의 청사진을 그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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