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기록되지 못한 이야기

2010.4.8

by 물구나무서기

신문사에 있으면서 1300여 개의 기사를 썼다.

모든 기사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루 만에 마감을 하고 모든 것을 마쳐야 하는 신문의 특성상

기사에 일정 부분 기여를 했다고 해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지면을 차지한다는 이유로 이름이 들어가지 못하기도 한다.


그런 일이 비일비재해서

생활의 일부분이고 아무렇지도 않긴 하나,

아래 기사는 여기에서라도 꼭 기억하고 싶은 욕심이 났다.


천안함 사건 때 함께 썼던 기사이며,

내 이름이 공식적으로 남아있지는 않지만

내 이름이 남은 1300여 개의 기사보다

내 마음 속에 더 깊이 남아 잊혀지지 않는 기사.




"사진에서 아빠 냄새 나요… 자전거 바람 넣어주기로 했는데"

2010.4.8

"학교 갈 때 타고 가려고 산 자전거인데 바람이 빠졌어요. 아빠가 자전거 바퀴 바람 넣어주기로 했는데…."

7일 오후 2시 경기도 평택 제2함대 사령부 인근의 해군아파트. 김태석(37) 상사의 첫째딸 김해빛나(8)양이 집 현관 앞에 놓인 자전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해빛나양은 외할머니 최태숙씨와 함께 집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지난달 26일 천안함이 침몰한 뒤 김 상사의 부인 이수정(36)씨와 해빛나, 해강(7)양, 해봄(6)양 그리고 최씨는 사령부 내 가족 숙소와 집을 오가며 김 상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해빛나가 갑자기 "아빠 사진 찾아볼래요"라며 안방의 옷장을 뒤져 김 상사의 사진이 담긴 앨범을 찾았다. "아, 여기서 아빠 냄새 나요. 찾았다!" 해빛나는 앨범에서 사진을 꺼내 들며 "아빠가 군인 아저씨 친구랑 찍은 사진이 많은데 다 못 찾겠어요"라며 들뜬 미소를 지었다.

김 상사는 해빛나가 아빠 사진을 보며 즐거워하던 그때로부터 2시간이 지난 오후 4시, 서해 백령도 인근의 천안함 함미(艦尾) 절단면 부근에서 차디찬 주검으로 발견됐다. 천안함 침몰 13일째인 이날 오후 4시 10분 김 상사는 군복을 입은 채 물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빠는 그렇게 돌아왔다.

김 상사의 시신을 태운 헬기는 백령도 사고해역 독도함을 떠나 오후 7시 30분쯤 평택 사령부에 도착했다. 흰 천으로 덮인 김 상사의 시신은 도열한 해군 장병 20명으로부터 경례를 받으며 구급차로 옮겨졌고 의무대로 향했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남편을 기다리고 있던 이씨는 차가운 주검이 돼 돌아온 남편이 믿기지 않는 듯 '어보(여보)…'를 외치며 오열했다. 딸 3명은 아빠의 죽음을 모르는 듯 김 상사를 기다리는 동안 해맑게 웃으며 의무대 앞을 뛰어놀아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김 상사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은 다른 실종자 가족들은 "해군이 바다를 떠났다"고 했다. 김 상사를 포함한 3형제는 모두 해군 출신이다. 첫째형 태원씨는 지난 1988년 해군에 입대해 1991년 중위로 전역했다. 참수리호 부정장까지 맡은 그는 현재 천안함 실종자 가족협의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둘째형 태균씨도 일반병으로 해군에서 복무했다. 김 상사의 처남 이용기(35)씨 역시 해군 출신이다. 김 상사는 지난 1일자로 중사에서 상사로 진급했다. 해군은 '실종자는 진급대상에서 보류된다'는 군 인사규정이 있지만 김 상사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진급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려 위로했다.

김 상사는 집안에서는 3남3녀의 막내로 집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큰누나 김양순(49)씨는 "배를 타서 딸을 자주 못 본 것을 항상 미안해했다"고 말했다. 셋째누나인 김원(47)씨도 "힘든 일이 있어도 전혀 내색하지 않고 마냥 웃던 사람이었다"고 기억했다. 김원씨는 "한 달 전에 출동을 마치고 돌아온 태석이가 '딸 셋이 내 앞에서 소녀시대 춤추고 있어. 나 너무 행복해'라고 말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 상사의 딸 이름인 '해빛나' '해강'은 김 상사의 어머니가 지어줬다. 해빛나는 하늘에 떠있는 해처럼 빛나는 아이가 되라는 뜻, 해강이는 해와 강처럼 맑고 넓은 아이가 되라는 소망이 담겼다. 막내 해봄이는 김 상사가 '해가 빛나는 봄'이라는 뜻을 담아 직접 지은 이름이다. 해봄이는 이날 집으로 돌아와 TV에 아빠가 나오자 TV화면에 뽀뽀를 하며 "아빠다~"라고 반가워했다. 차가운 바람이 잦아들고 봄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한 4월 7일. 김 상사는 부인과 세 딸 그리고 17년간 함께 해온 바다를 뒤로 하고, 세 딸의 이름에 모두 들어가는 '해'가 있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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