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5.20
20년 전으로 시계를 돌린다.
처음으로 내가 쓴 글이 누군가의 인정을 받은 날이다.
티코아빠.
1997년, 고등학교 2학년 때 중앙일보에 기고해 실렸던 글이다.
그 당시 글을 썼던 상황을 생각하면,
어쨌든 어느 날 오후 독서실에 앉아 공부를 하다가 문득 '티코아빠'라는 생각이 떠올랐고
아무도 없는 그곳에 앉아 글을 쭈욱 써내려 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선 신문에 보냈고 신문에 실렸다. (글 후반부는 지면 제약 때문인지 잘렸다)
그래서 나는 30만원을 받았다.
지금도 30만원은 큰돈인데
당시 1997년에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일 때 글쓰기 하나로만 30만원을 벌다니!
엄마도 좋아했고 나도 무지 좋아했다.
그때부터 글맛을 깨닫게 된 것 같다.
<일상에서>얌전히 차를 모는 '티코' 아빠
[중앙일보] 입력 1997.05.20 00:00 | 종합 16면
티코. 우리나라에서 국민차로 보급된 가장 값이 싸고 귀엽고 조그마한 자동차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나는 친구들 5명과 함께 담임선생님이 자랑하던 빨간색 티코를 들어 올리곤 했다. 그때 나와 친구들은 차를 들 수 있다는 뿌듯함에 크게 웃곤 했다.
그러나 지금 고등학생인 나는 티코를 보거나 티코에 대한 우스운 이야기를 들으면 쓴웃음밖에 지을 수 없다. 우리 집 자가용이 바로 티코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A레미콘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레미콘 회사에 근무하는 사원이 티코를 끌고 다니다니. 참 아이로닉한 이야기다. 아버지도 몇 년 전에 엑셀 자가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일로 집도 이사하고 차도 모두 팔았다. 그리고 얼마 안돼 아버지는 티코를 새로 장만했다. 내가 아버지의 티코 차를 탈 기회가 자주 있는 건 아니었다. 아니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게 아니라 부끄러움 때문에 일부러 타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아버지는 학교까지 차를 태워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냥 버스를 타고 가겠다고 말했다. 요즘 버스전용차로제라서 버스가 훨씬 빠르다면서.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버스가 텅 빈 도로를 씽씽 달려 나갈 때 승용차, 택시들은 교통체증으로 답답한 도로를 느릿느릿 기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날 나는 학교에 지각을 해서 담임선생님에게 꾸지람을 받았다.
스쿠프를 끌고 다니는 큰형도 농담 삼아 이런 말을 한다. “아버지, 나 같으면 티코를 타느니 차라리 차를 안타요.” 몇 년 전에 레미콘차를 운전하던 아버지와 지금 티코를 운전하시는 아버지를 비교해 보면 좀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아버지가 1백㎞ 이상 속도로 운전하는 것을 나는 최근 본 적이 없다. 추월하기, 끼어들기 등은 모두 잊으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