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인간실격'

by 물구나무서기

부끄럼 많은 근무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회사원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는 배고픔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아니, 그건 제가 의식주가 넉넉한 집안에서 자랐다는 그런 시건방진 뜻이 아니고, ‘돈 없는 생활’이라는 게 어떤 생활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저는 몇 달 동안 월급을 한 푼도 못 받아도 그걸 느끼지 못했습니다. 물론 저도 따박따박 매달 안정적으로 통장에 꽂히는 현금을 꽤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돈이 궁해서 뭔가를 받은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도대체 회사원은 왜 매달 월급을 받는 것일까요. 월급을 못 받으면 생계 유지를 못한다는 말은 저에게는 그저 듣기 싫은 위협으로밖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미신은 그러나 언제나 저에게 불안과 공포를 안겨주었습니다. 회사원으로 일하지 못하면 죽는다. 그러니까 일해서 먹고 살아야 한다, 라는 말만큼 저에게 난해하고 어렵고, 그리고 협박 비슷하게 울리는 말은 없었습니다.


즉 저에게는 ‘회사원이 되어 일하고 돈을 번다’라는 말의 의미가 지금껏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될 것 같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회사원이라는 것이 알 수가 없어졌고, 저 혼자 별난 놈인 것 같은 불안과 공포가 엄습할 뿐이었습니다. 저는 직장 동료와 거의 대화를 못 나눕니다. 무엇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몰랐던 것입니다.
아부는 회사원에 대한 저의 최후의 구애였습니다. 저는 회사원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아무래도 회사원을 단념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아부라는 가는 실로 간신히 회사원과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늘 웃는 얼굴로 탬버린을 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필사적인, 그야말로 천 번에 한 번밖에 안 되는 기회를 잡아야 하는 위기일발의 진땀 나는 서비스였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인정받아 승진할 뻔했습니다. 인정받아 승진한다는 개념 또한 저를 몹시 두렵게 했습니다. 거의 완벽하게 사람들을 속이다가 전지전능한 어떤 사람한테 간파 당하여 산산조각이 나고 죽기보다 더한 창피를 당하게 되는 것이 ‘인정받아 승진한다’는 상태에 대한 제 정의였습니다.


서로 속이면서, 게다가 이상하게도 전혀 상처를 입지도 않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정말이지 산뜻하고 깨끗하고 밝고 명랑한 불신이 회사원의 삶에는 충만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저한테는 서로 속이면서 살아가는, 혹은 살아갈 자신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회사원이야말로 난해한 것입니다. 직장동료는 끝내 저한테 그 요령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그것만 터득했더라면 제가 회사원을 이렇게 두려워하면서 필사적인 서비스 같은 것은 안 해도 됐을 텐데 말입니다. 회사원의 삶과 대립되어 밤이면 밤마다 지옥 같은 괴로움을 맛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4번의 퇴사. 수 차례 사직서를 쓰고 회사원의 생을 마감하겠다고 스스로를 깊은 강물에 던졌지만, 매번 실패했습니다. 함께 사직서를 냈던 여성 몇몇은 정말로 회사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저는 비참하게도 어느 곳엔가의 사무실 한 켠에서 힘겹게 목숨을 부지하곤 했습니다.


제 불행은 거절할 능력이 없는 자의 불행이었습니다. 권하는데 거절하면 상대방 마음에도 제 마음에도 영원히 치유할 길 없는 생생한 금이 갈 것 같은 공포에 위협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결코 미치지 않았습니다. 단 한 순간도 미친 적은 없었습니다. 아아, 그렇지만 광인들은 대개 그렇게들 말한다고 합니다. 즉 퇴사 후 이 휴식에 들어온 자는 미친 자, 들어오지 않은 자는 정상이라는 얘기가 되는 것이지요.


회사원 실격.
이제 저는 더 이상 회사원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회사원’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저는 올해로 서른일곱이 되었습니다. 백발이 눈에 띄게 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쉰 살 이상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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