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것의 인간, 그 쫄깃함에 대하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1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by 물구나무서기


공교롭게 두 사람은 같은 시기에 태어났습니다.


‘인간실격(다자이 오사무 저)’의 오바 요조는 1948년 일본에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테네시 윌리엄스 저)’의 블랑시 두보아는 1947년 미국에서 세상의 빛을 보았습니다.


요조와 블랑시는 태어난 시기뿐만 아니라, 삶의 궤적 또한 비슷합니다. 부잣집 자제로 태어났지만 안정적으로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과 타락을 거듭하다 세상의 버림을 받았습니다. 결국엔 가장 친했던 사람들로부터 정신병원으로 보내지는 신세로 전락합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세상은 승자와 패자 구분 없이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처절하게 겪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일까요. 싱싱한 활어회 한 마리를 만난 듯, 날것의 인간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으며 날것이 주는 쫄깃함에 시대가 공감했습니다.


요조와 블랑시는 패전국과 승전국이라는 국가 구분에 상관없이 모든 조건을 초월한 채 온전한 한 인간으로서 살았습니다. 인간적인 날것을 한껏 드러냈지만 ‘실격자’ ‘정신병자’로 낙인 찍힌 이들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아무런 합의 없이 동시대에 태어났으며, 마치 태평양이 없는 것처럼 다르지만 결국 같은 각자의 땅에서 호응을 받았습니다.


인간의 날것, 나약함과 허탈함 그리고 구질구질함은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우리는 여전히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손에 붙들고 있으며, 유튜브에서는 흑백필름 버전의 1950년대 제작 영화가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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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끊임없이 인간을 재료로 합니다.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2명의 남자, 2명의 여자 간 이야기를 그린 영화 ‘클로저’는 앨리스(나탈리 포트만)의 “Hello, Stranger”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난 언제나 낯선 사람의 친절에 의지해왔어요”라는 블랑시의 말에서 앨리스가 떠올랐습니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인간 군상의 모습을 그린 이 영화가 잊혀지지 않고 다시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날것의 인간 그 단면을 살펴보는 일을, 활어회 한 마리를 먹는 일보다 적게 하고 있지는 않나 라는 고민이 듭니다. 이게 필요한 고민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조, 블랑시, 앨리스를 한 그릇에 담아놓으니 테이블이 요동치는 것 같습니다.


구글 지도에서 블랑시가 살았던 미시시피주 로렐에서부터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까지의 거리를 검색해보니 141마일(226km)입니다. 차로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블랑시는 없어도 블랑시에 대한 기억은 뚜렷해서, 언젠가는 그곳에 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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