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무인도에 가져갈 세 가지

2006.7.27 작문

by 물구나무서기


한창 언론사 입사 시험을 준비하던 때가 2006년이다.

논술, 작문으로 필기시험을 치르기 때문에

같은 언론사 지망생들과 함께 스터디를 하면서 논술, 작문을 여러 편 썼다.


논술은 정해진 구조(서론, 본론, 결론)에 맞춰 설득력 있게 논리를 전개하는 게 핵심인 반면,

작문은 특정 키워드가 주어지면 그에 맞춰서 자유롭게 쓰면 된다.

정해진 형식이 없고 짧은 시간 안에 글을 완성해야 해서 더 어렵기도 하지만

그냥 넋 놓고 상상력을 펼치면 흥미로운 글도 종종 나와서

쓰는 재미, 읽는 재미 모두 작문이 좀 더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래 글은 '무인도에 가져갈 세 가지'라는 키워드에 대해 썼던 작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코끼리 버거'라는 구체적인 존재와 단어가 주는 힘이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느껴져서 살짝 놀랐다.




- 햄버거

2006년 5월 5일 어린이날. 이제 26살이 돼버린 내겐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는 날이다. 그래서 하루 종일 집에서 쉬면서 그냥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이 되자 가게에서 집으로 돌아오시던 길에 어머니께서 장을 봐 오셨다. 그런데 평소에는 잘 사지 않으셨던 햄버거를 사 오셨다. 맥도날드, KFC 이런 정식 패스트푸드점 햄버거가 아니라 그냥 동네 슈퍼마켓에서 파는 햄버거다. ‘코끼리 버거.’ 문득 낮에 “어린이날인데 밖에 안 나가니?”라고 물으셨던 어머니와의 전화통화 내용이 생각났다. 햄버거. 어린이날이라고 어머니께서 특별히 사 오신 선물이다. 난 그 ‘코끼리 버거’가 어머님이 내게 주시는 어린이날 선물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평소에 어머니께서는 슈퍼마켓에서 빵을 사 오실 때면 항상 호떡빵을 사 오셨기 때문이다. 다른 빵을 사 오신 적은 내 기억에 한 번도 없다. 무엇보다 어머니는 햄버거를 좋아하시지 않는다. 가슴이 뭉클했다. 어머니께 "갑자기 웬 햄버거를 사오셨어요?"라고 슬쩍 여쭤보니, 그냥 먹으라고 사 온 거라고, 별 일 아닌 것처럼 말씀하시며 태연히 냉장고 정리를 하신다. 하나도 아니고 세 개다. 전자레인지에 데워진 햄버거만큼이나 내 눈시울도 뜨거워졌다.


- 냄비

아침에 잠에서 깨 일어났다. 맑은 공기를 들이마셔야 할 아침에 웬걸, 내방문을 열자마자 탄 냄새가 났다. 요즘 따라 아버지, 어머니께서 손수 만드신 찌개를 자주 태우셨던 기억이 났다. 부엌으로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냄비가 열심히 타고 있었다. 성급한 마음에 일단 가스불을 껐다. 어머니는 작은 호프집을 하셔서 밤에는 가게에 계시다. 아버지는 어젯밤에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새벽에 들어오신 게 확실했다.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 놓은 채로 소파에 잠깐 누워계시다가 잠이 드셨던 것 같다. 최근 들어 곧잘 있는 일이다. 멀쩡한 대낮에도 찌개를 끓였던 일을 그냥 잊는 것도 종종 이유가 된다. 휴대폰을 잃어버린 것 같으시다며 혹시 집에 휴대폰이 있지 않냐고 내게 물으시는 아버지의 목소리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무릎 관절이 안 좋으셔서 해거름에 아스팔트길을 절뚝절뚝 걸으시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기억난다. 그 뒷모습을 보며 옷에 배인 탄 냄새에 투덜대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진다.


- 족발

어머니께서 족발을 먹자고 하신다. 요즘 다이어트 중인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음식이다. 어머니는 드시고 싶으신 음식이면 직접 시켜서 혼자 드시고 남기셔도 될 텐데 매번 굳이 나한테 물어보신다. 먹고 싶냐고. 저녁밥을 방금 해치운 나는 어머니의 마음을 알기에 대답한다. 배 많이 안 고프니까 작은 크기로 시켜먹자고. 전단 책자를 뒤적거리시던 어머니는 결국 가장 큰 사이즈의 족발을 시키셨다. 大자가 아니면 배달 오는 사람이 싫어한단다. 족발을 먹다 보니 저녁밥까지 먹은 내가 더 많이 먹었다. 큰 족발을 시켜 놓고서도 어머니는 서비스 음식으로 온 막국수가 맛있다면서 국수만 드신다. 내가 집에 없었으면 아마 어머니는 오늘도 남은 찬밥을 모아 고추장에 비벼 드셨을 것이다. TV를 보며 어머니는 하실 말씀도 어찌 그리 많으신지 이래저래 참견이시다. 평소엔 말씀도 적으신데... 이렇게같이 앉아 족발쌈을 만들어 내 입속에 집어넣는 것만으로도 어머니께는 효도인가 보다. 그냥 옆에 있어드리고 싶다. 그렇게 효도하고 싶다. 그러면 좋아하실 것 같다.

무인도. 아무도 없다. 나 혼자다. 막상 이렇게 생각하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보다, 외로움이 안겨줄 두려움이 무엇보다 먼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항상 조용히 내 옆에 계시던 부모님이 생각났다. 햄버거, 냄비, 족발이 부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보다 먼저 내 가슴에 다가왔다. 이 세 가지 물건을 기억하면 내 생존의지도 절대 꺾을 수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