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아, 짜증 나.’
오랜만에 꺼낸 여름 교복에서 실밥이 흘러나왔다. 보기 싫게 흐느적거리는 실을 보며 민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실밥의 근원을 찾아 올라가 보니 어깨 소매 봉제가 아슬아슬하다. 잘못하면 늦을 것 같은데, 아침밥을 먹지 말고 바느질을 해야 하나…. 바느질 도구를 가져와 실밥을 자르고 그 자리를 한 땀 한 땀 채우기 시작했다. 째깍째깍 소리에 맞춰 바늘을 넣고 빼다 보니 어느새 학교에 갈 시간.
‘망했다...’
바늘은 나왔는데 실은 다 나오지 않고 그대로 엉켜있었다. 운수가 없는 날이다. 엉킨 실을 풀다가 열이 받아 힘을 주었더니 실이 뚝 끊겼다. 엉킨 실밥은 그대로 어깨 소매에 달라붙어 있었다. 아까 흐느적거리는 실밥이 훨씬 나았을 것 같다.
‘이제 안 가면 지각인데….’
민지는 대충 교복을 걸치고 밥 한 수저를 입에 푹 퍼넣고 그대로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아이들이 내 소매만 보는 건 아닐 테니 괜찮겠지.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밥이나 먹을걸. 후회에서 달음박질을 하듯 민주는 속도를 올렸다.
아슬아슬하게 학교에 도착. 완전히 운수 나쁜 날은 아니라 생각하며 자리에 앉았다. 개학하고 첫날이라 그런지 친구들 머리카락이 알록달록하다. 탈색하고 급하게 머리를 다시 염색한 연지의 머리 색은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 보니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신다. 처음 보는 얼굴도 하나 있다.
“안녕하세요, 유상준입니다.”
아직 하복을 준비하지 못했는지 춘추복 차림이었다. 흰색 하복이 한가득 메운 교실 안에 유일한 가을옷이 유독 눈에 띄었다. 본인도 그 사실을 아는지 연신 소매의 단추를 만지작거렸다.
"야야, 이번에 새로 전학 온 애 귀엽지 않아? 피구도 잘하면 좋겠다."
활달한 성격의 연지는 벌써부터 전학생이 마음에 드는 눈치다. 짧게 줄인 체육복 바지 아래로 늘씬한 다리가 폴짝폴짝 뛰어오른다. 개학 첫날부터 체육이라니. 체육복을 챙겨 오지 않은 민주는 교복 치마를 야속하게 내려다본다.
체육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오늘 따라 같이 뛰고 싶다. 몽실몽실 뭉게구름이 솟은 하늘이 넓은 운동장에 떨어질 듯 넘실거린다. 그 위로 공을 던지고 자신도 뛰어들고 싶었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짝이 안 맞잖아. 교복 입은 사람 중 피구 할 사람?"
체육복 안 입은 사람은 민지만이 아닌지 사람이 많이 부족했다. 민지는 눈치를 보며 어물쩍 한편에 꼈다. 대충 인원이 맞자 피구가 시작되었다. 몸이 굼뜬 민지는 슬금슬금 다른 학생들을 방패 삼아 요령껏 공을 피하기만 했다. 반면 화려한 경기를 펼치던 연지는 그만 공에 맞아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굼뜬 누구보다 빨리 밖으로 나가게 된 연지의 볼이 불룩해졌다. 민지는 괜히 미안해졌다.
"서민지 받아-"
밖에 나가서도 화려한 슈팅을 선보이던 연지는 민지에게 공을 패스했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공에 민지는 깜짝 놀라 받기보다는 피했다. 순간 누군가 민지를 밀치다 엉켜서 넘어지고 말았다.
"괜찮아?"
둥그런 눈이 자신을 마주했다. 교복과 얼굴에 온통 흙먼지를 묻힌 상준이 그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다 씩 웃었다. 가뜩이나 정신없는데 열까지 오르는 것 같다.
"야, 빨리 일어나. 둘 다 아웃이다."
아이들의 야유 섞인 민원 소리에 민지와 상준을 빠르게 몸을 일으키다 서로 엎어졌다. 상준의 소매 단추와 민지의 엉킨 실밥이 엉켜 있었다. 민지는 고개를 들었다. 정신이 아득하게 얽혀 구름 위를 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첫사랑에 얽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