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가온 이맘때. 벌써 열 번은 더 검토한 중간고사 과제는 이제 닳고 닳아서 더는 볼 게 없을 것 같은데 자꾸만 오타 하나라도 찾으려는 이 마음은 뭘까. 난 항상 기대와 실망을 품고 이 맘 때를 기다렸지. 항상 시험을 치르고 그 결과를 받아보는 끔찍한 기분.
5년 전 이맘때, 나는 나의 소중한 것을 포기했지. 그 뒤로 답이 정해진 시험을 치르며 매년 이 맘 때를 지나쳤지. 정해진 답은 어차피 낭떠러지. 나는 정말 수많은 낭떠러지에 떨어졌어. 너무 많이 떨어져서 나를 떠민 이들이 종종 내가 죽지 않을까 걱정하는 시선까지 받으며. 그 어처구니없음이란. 하지만 사실 나도 내가 죽지 않은 게 가끔 신기해.
마지막(?) 낭떠러지에서 나는 결국 스스로 뛰어내렸던 것 같아. 거기서 깨달았지. 낭떠러지 아래에도 길은 있다는 걸. 하지만 피투성이인 나를 다시 일으키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아. 아직도 너무 많은 상처가, 그리고 상처 준 이들이 도사리는 곳에서 항상 나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나는 올해도 시험에 들었던가? 그 시험의 결과는 어차피 낭떠러지라는 것을 알기에, 이제는 익숙해진 그 높이에 나는 쉽게 그것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시험에 들고 시험에 떨어지는 것은 언제나 아프고 나를 자괴감에 빠지게 한다. 대학원 시험은 아무리 어려워도 나를 온전히 그대로 평가해주는데 너희는 그렇지 않았어.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그것이 나에게 한 번도 아프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그것을 원해서 그랬다는 것도 알고 그것이 성공적이라고 시인하면 무척 기뻐할 것도 알지만, 그리 시인할 수밖에 없다.
나는 여러 번 넘어져 주었는데, 그리고 어차피 넘어지라면 넘어질 수밖에 없는 위치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 어차피 내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나는 툭 건드리면 부러질 수밖에 없는 성냥개비보다 약한 존재일 뿐. 지금 생각하는 건데, 기대라는 높이 위에서 나를 떨어뜨리는 이 시험, 아니 시련은 심연과도 같아서 아직 땅에 닿지 않은 것 같아. 5년 동안 단 한 번도 바닥에 닿지 않은 것처럼 또 떨어지는 중인 것 같아.
그래도 공부를 하는 건 허락해주더군. 그것은 잠깐이지만 나에게 반짝이는 빛이 되어 잠시 고통을 잊고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너무 움츠러든 몸은 꼽추처럼 굽어 언제든 넘어질 준비가 된 듯 굳어 있지만 그 몸으로도 반짝이는 빛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으며 기뻤다. 절벽 위의 잃어버린 모든 것들이 그립고 아프지만, 그럼에도 그것들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다시 이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니 바라고 있다.
그때가 오면 그것을 잘라버릴 것인가? 또다시 나를 절벽에서 떠밀을 것인가? 어차피 여기서 내가 발 디딜 곳이 얼마나 있던가. 항상 사방이 절벽이었고 한 번도 한 발 앞이 절벽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던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