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었던가

by 수리향


안 될 것 같고, 아슬아슬했는데 용케 흘러가던 운을 잡아채어 내 손에 올려놓은 기분. 온전히 나의 것이 되었음을 알았을 때의 안도감과 희열이란 참.

방해가 많을 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처음에는 다른 곳에 썼던 것 같아. 눈치챘겠지만, 너무 얕았지만 그렇게라도 조금의 경쟁이라도 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항상 내가 도전하면 그곳만 그렇게 경쟁이 몰리는 건 항상 우연이라 치부하기 어려운 일이니까.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눈치 보면서 열심히 머리 굴렸던 것 같은데 결국은 나의 1년의 행적이 가장 큰 변수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인간관계도 커리어에 대한 진실성도 시험대에 올라 그렇게 나 자신을 부끄럽게 할 줄은.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는 그런 것들도 하나하나 부드럽게 엮어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나에게 부족한 면이 결국 나의 걸림돌이 되는 날이 오고야 마니까. 이번에는 (정말) 운이 좋았다고 하지만 다음에는 그렇게 운에 기댈 수 없을 테니까.


정리를 해야겠지. 이미 정리하고 있었고 동산이나 부동산은 오래 전부터 염두에 두어서 인지 순조로운 것 같아. 사람 정리가 쉽지 않은데, 잘 하고 있다지만 역시 부모님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 여권 사진을 찍으며 생각했어. 마치 준비되었다는 듯이 쉽게 준비되어지는 것들을 보며 보이지 않는 바람이 나를 밀어주고 있다는 것을. 오래 전부터 준비해온 작별이라 쉬운 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가야 할 운명이라 그리 쉬운 건지. 다시 돌아오기는 쉽지 않을 지 모르는데, 부모님은 어떻게 이것을 받아들이실지. 다행히 형제들이 있으니 나 하나쯤 없다고 허전하지는 않으실테지.


꿈을 꾸었어. 작은 쌍안경을 사서 돌 계단에 앉아 북간도의 별의 헤는 밤을. 그 사무치게 차가운 공기와 칠흙 같은 검은 하늘, 빛나는 별 무리를 과거에서 보았듯이 현재의, 아니 미래의 내가 바라보는 모습을. 그 별을 헤던 과거의 그와 같은 별을 헤일 훗날의 나를, 그 별에 닿은 나의 시선이 시간을 거슬러 그에게 닿지 않을까. 가끔 내가 자연이라는 공간과 이어짐을 느낄 때마다, 그것 너머의 시간을 이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그것은 나의 감각에 넘어서는 일임에도 우주는 과거에서 지금까지 같은 시간에 같은 별들을 띄워주기에 당시의 그가 올려다 보던 하늘이 내가 올려다 볼 하늘과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바라는 작은 낭만은 그건데, 그거 하나가 생각보다 큰 자리를 차지해서 가기 전부터 달뜬 마음에 괜시리 검지 않은 천장조차 아름다워 보인다.


별 일 없이 무사히 닿을 수 있기를. 내가 두고 가는 것들이 온전히 그리고 슬프지 않고 자리를 지킬 수 있기를. 그래서 무사히 그곳을 별을 보며 이곳의 삶을 즐거이 회상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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