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당근

by 수리향

요즘은 하루를 당근으로 시작해 당근으로 끝낸다. 그냥 버려도 상관없는 것들. 하지만 자원낭비 같아서 그냥 주인 찾아주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나하나 보낸다. 아까운 것도 있고 정든 것도 있지만 그래도 가져갈 수 없고 2년 뒤 돌아왔을 때 다시 사용할만하지는 않다. 어쩌다 보니 묻어두고 사는 것도 생각보다 많더라. 그렇게 하나하나 정리하고 보니 어느새 방이 더 넓고 허하게 느껴졌다. 붙박이처럼 붙어 있는 액자를 내리고 크리스마스 리스를 걸어보니 썰렁했던 방이 좀 따뜻해진 것 같다.


한 달 뒤, 아니 두 달 뒤 내가 도착할 방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그 추운 한복판에서 무엇을 만나고 또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그렇게 모질게 당하고도 다시 장기판 말이 되려 스스로 걸어 들어가다니. 근데 내가 발을 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채로 안개처럼 흩어지겠지. 그때처럼. 결국 몇 개의 과일만 위선자들이 따먹고 나머지는 완벽한 실패로 끝난 축제를 보며, 도대체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종을 울렸나 생각했다.


분명히 누군가 희생한다 한들, 그것을 마땅히 누려야 하는 이들과 그 사회의 몫으로 온전히 돌아가지는 않는다. 그냥 군림하는 이들을 위한 포장지가 되거나 이해관계에 의해 버려지고 거래된다. 그리고 결과가 어떻든 돌아오면 나는 돌아온 대가를 치러야 한다. 아니 돌아오지 못한다. 왜냐면 과일을 모두 차지해야 할 자에게 그것을 따온 자는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래된 법칙.


그래서 바란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기를. 하지만, 개인의 안위를 떼어놓고 생각하면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미 늦은지도 모르고 나는 헛짓거리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당근도 다 헛짓거리라면... 참 슬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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