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은 예정대로 할 것 같다. 특대는 흔히 조기졸업이 없다고 하지만 내가 다닌 대학원에서는 조기졸업 제도가 있다. 첫 학기 4.1/4.3 이상이면 신청 가능하며 나머지 학기를 8학점 씩 듣고 매 학기 학점이 4.1/4.3 이상이면 조기졸업이 가능하다. 한 학기에 듣는 과목이 2학점 짜리 전공 4과목과 0학점 짜리 세미나 1 과목 해서 총 5과목을 듣는다. 통상 6학점을 들으면 일주일에 이틀만 수업을 들으면 되는데 8학점을 들으려면 일주일에 3일은 대학원 수업에 바쳐야 한다. 문제는 수업의 양과 과제의 양은 비례하므로 수업이 아닌 날들도 모두 과제로 바쳐야 한다. 그러지 않고도 쉽게 졸업하는 이도 있을 것 같은데, 나 같은 보통의 사람은 노력을 하지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다행히 마지막 학기는 졸업생의 특권(?)으로 2학점 짜리 세미나를 수강할 수 있고, 프로젝트나 논문을 선택하면 2학점짜리 사실상 수업 없는 과목을 수강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기졸업 시 논문은 선택이 불가능하므로 결국 프로젝트 과목을 수강하였다. 사실 수업만 듣고 학점으로 졸업해도 되는데 그래도 그냥 졸업하기 아쉬워서 프로젝트를 선택했다. 엄청 고생했던 것 같다. 말이 2학점이지 프로젝트에 대한 부담감과 공부의 양을 환산하면 10학점은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역시 마감의 법칙에 따라 프로젝트 발표일에 맞춰 프로젝트를 완성했던 것 같다. 나름 호평을 받았는데 문제는 나 다음에 에이스 분이 발표를 하는 바람에...
졸업할 때쯤 되니 머신러닝 관련 세미나와 수업을 워낙 많이 들어서 다들 머신러닝 쪽 논문과 프로젝트가 식상한 지 반응이 참 미미했다. 그런데 나와 에이스 분은 AR/VR 쪽에 몇 가지 기술을 접목해서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었고 소재가 신선해서인지 질문도 많이 나오고 분위기가 좋았다. 나의 경우 AR기술과 딥러닝 모델을 이용한 시각장애인용 어플을 만들었는데 취지도 좋고 해서 많은 피드백과 질문을 받았었다. 하지만 그 바로 다음이 에이스 분이었는데 AR/VR 기술뿐 아니라 OpenGL을 직접 수정하여 사용한 개발을 하였더라. 과거에 같이 그래픽 수업을 들을 때 우수 프로젝트로 같이 이름을 올려서 나도 열심히 하면 되겠지 했는데, 넘사벽을 느꼈달까... 아무튼 그 날 이후 일주일 동안 얼마나 이불 킥을 했던지... 내 실력이 그렇게 부끄럽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프로젝트 발표 이후 긴장이 많이 풀리고 집중력이 떨어져서 나머지 시험 과제는 대충 해서 냈는데 역시나 성적이 그리 좋지 못하다. 그래도 합산하니 4.1은 무난하게 넘어서 아무튼 졸업이다. 사실 막판에 프로젝트와 중국 쪽 지원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낭비해서 기말고사 때 마지막 힘을 내지 못하고 대충대충 한 경향이 있지만... 어차피 마지막 학기 성적은 졸업장만 연결되고 장학금은 더 받을 수 없으므로 아쉽지만 졸업이라는 것으로 만족하련다. 그 뒤로도 출국 준비와 비자 발급 건으로 정말 진이 다 빠진 상태라 졸업에 신경을 못 썼는데 그래도 직전 학기 성적 장학금도 들어오고 이번 학기 학점도 졸업 요건에 맞아 만족스럽다.
하나 아쉬운 것은 1월 출국이라 졸업장도 졸업 선물도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어차피 전공 회비를 잘 안 내서 졸업반지 신청은 못 하지만, 저번 학기에 전공 총무를 하면서 새로 만든 졸업 반지가 내내 눈에 밟혔다. 전공 총무 당시 선배들을 위해 졸업반지를 주문하다 심히 공돌이스러운 평반지에 기함하여 새로 도입한 디자인이었다. 그 반지 도입하고 여성 학우들 뿐 아니라 남성 학우 분들의 전공 회비 납입률이 수직 상승했는데, 역시나 반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전공 회비 납입률이 부진했구나 하는 깨달음. 아무튼 그 디자인은 내가 가장 잘 알고 (디자인에서 주문까지 내가 했다) 있기 때문에 인터넷 상으로 비슷한 모양의 반지를 주문했다. 졸업 사정 끝나고 반지 주문할 때쯤에는 나는 한국에 없을 것이기 때문에 셀프로 졸업반지를 맞춘 것이다.
Veritas vos liberabit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학교 교훈으로 각인을 세기고 반지를 기다리며 출국 준비를 한다. 진리를 찾기에는 내가 많이 부족하고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던 2년 간의 공부. 그래서 도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혁신이나 선구자나 그런 것 바라지 않는다. 그럴 역량도 되지 못하고 그럴 생각도 없다. 다만 하나하나 조금씩 나를 갱신하기 바란다. 그 작은 발걸음이 누군가에 세상에 조금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원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도 좋은 영향을 받고 세상의 새로운 면을 탐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진리란 것은 어차피 도달하기 어려운 거니까, 그 과정에서 만나는 것들을 즐길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