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집이 나가지 않아서, 출국 전에 계약서도 못 적고 나갈까 봐 걱정이 많는데, 월세만 좀 내리니 순식간에 집이 나가더라. 역시 기승전 돈이 최고구나 생각을 했다. 사실 청약된 집도 있는데 굳이 이 집을 산 이유는 이렇게 외국에 나갈 오늘 같은 날 때문이었다. 막상 현실이 되고 보니 맨날 을(임차인)의 입장에서 계약서를 적던 내가 갑(임대인)의 입장이 되었다는 것이 좀 얼떨떨하기도 하고 감격스럽기도 했다.
과거에도 파견으로 몇 개월을 전셋집을 두고 생활한 적이 있었다. 계약 기간도 그렇고 어차피 돌아와서 생활할 집이 있어야 해서 전셋집을 그냥 비워두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게 다 돈이더라. 만약 그게 내 집이었다면 월세를 주어서 돈이라도 벌었을 텐데, 관리비만 나가고 (당시 오피스텔이라 빈집인데도 15만 원씩 나왔다) 세금만 잘 나가는 것을 보며, 깨닫는 바가 많았다. 그래서 해외로 나갈 결심을 한 순간부터 출국 전까지는 아예 월세로 살거나, 아니면 집을 사서 월세를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열심히 계산을 해보니 풀옵션 월세를 살다가 떠나는 것보다 집을 사서 가구와 가전을 채운 후 그걸 옵션으로 월세를 주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결론이 났다. 집값이 떨어질 수도 있겠지만 축적된 데이터들을 보면 결국 물가상승률에 따라 집값은 오르거나 보존될 수밖에 없더라. 물론 환금성이 있는 아파트의 경우지만. 그래서 작지만 아파트를 구매했고 예정대로 해외에 나가게 되면서 이렇게 월세를 치게 된 것이다. 사실 가구나 가전은 대부분 다른 이사 가는 집들에서 중고로 산 헌 거라 이 집에서 럭셔리하게 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따뜻하고 아늑한 집에서 편하게 잘 살다 간 것 같다. 항상 세 들어 살 때 많이 추웠는데 이 집은 내 집이라 그런지 난방도 그렇고 추위를 잘 타는 나에게 참 좋은 집이었다.
가장 좋은 건 떠난 후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 두고 간 것들이 아쉽지만 돌아왔을 때 어차피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을 아니까. 돌아왔을 때 내 자리가 있다는 것도 나를 기다리는 것이 있다는 것도 참 감사하고 든든한 일인 것 같다. 너는 돌아왔을 때 그 모습 그대로 있을까? 새로운 주인이 깔끔하니 잘 돌봐줄 거라 믿는다. 남은 날들을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