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 연수를 했지만 아직 많은 교사들은 '그게 정말 되겠어?' 하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정보부장이 아직 어려서(보기보다 어리지 않다) 의욕만 앞서 저러는데 혼자 열심히 하다 말겠지. 몇몇 그런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러든 말든 나는 신경 쓸 여지없이 일을 밀고 나갔다. 하지만 원격 수업이란 것이 수업만 원격으로 할 뿐 본질적으로 '수업'이기 때문에 교육과정, 학교 일정, 평가, 출결까지 모두 연관되다 보니 어느 순간 어느 방향으로 일을 진행해야 할지 혼자 정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작년 교장선생님께서 부장단 하나는 잘 구성하고 가셨다. 몇 번의 연수로 원격 수업에 대한 감을 딱 잡은 부장교사들은 이제 내가 혼자 고군분투하게 놔두지 않고 적극적으로 회의를 열어 의견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일단 줌으로 수업을 할 경우 무료 계정이 40분 제한이 생기는데 이 부분은 내가 교육청에서 MX 레코드를 받아 사설 업체를 이용해 메일서버를 구축 후 학교 기관 인증을 받는 것으로 해결하였다. 신생 플랫폼 업체인 줌이 구글보다 훨씬 대인배라서 2학기인 지금까지도 우리 학교의 계정은 교육 기관으로서 하루 종일 줌을 끊기지 않고 쓸 수 있었다. 메일 서버는 무료인 Daum 스마트워크를 이용하였다. 메일이 필요한 게 아니라 줌에 가입할 학교 계정만 생성하면 되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굳이 유료 서비스를 신청할 필요는 없었다.
기술적인 문제는 대충 해결이 된 것 같은데 우리가 구한 기자재가 36반을 돌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당시 나의 생각은 대학원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것처럼 각자 선생님들이 자신의 수업방을 열고 시간이 되면 학생들이 그 수업방에 접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36개의 수업이 동시에 돌아가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기자재가 필요한데 우리가 확보한 기자재는 10개 남짓. 일단 헤드셋부터 필요한데 전 교직원 원격 연수를 몇 번 하다 보니 헤드셋도 부족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빌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게다가 선생님이 원격 수업을 하는 수업방을 매번 학생들이 들어와 접속을 해야 하는데 학생이 들어와서 출결 하는 시간이 길어져서 수업 진행에 방해가 된다. (초반에 줌이 들어오고 나갈 때 울리는 차임벨을 끄는 옵션이 없어서 수업 중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 계속되는 회의와 연수, 하루에도 열개씩 내려오는 엄청난 양의 공문에 질려 있던 나는 머리에 쥐가 난 상태였고 여러 부장님들의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딱 좋은 게 없었다. 근데 그 회의에 초대받지 못한 취업부장님이 잠깐 회의실에 들렸다.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는데 들어봐'
운동복 차림에 쿨하게 들어와서 던진 부장님의 방안은 쇼킹할 정도로 좋았다. 줌 수업방을 하나의 교실로 생각하고 아침에 담임 선생님이 열은 후 수업방을 바꾸지 말고 교사가 교실을 찾아가서 수업하면 되는 것이었다. 교사들은 예전처럼 종치면 교실에 찾아가 헤드셋 끼고 수업하면 되니 편하고 아이들은 아침에 한번 들어가면 나올 필요도 없다. (대박)
꼬리를 물고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줌의 경우 시간만 무제한이 아니라 인원수도 100명까지 수용 가능하기 때문에 한 과 당 70명 안팎의 우리 학교의 경우 과별로 시간표를 조정하여 같이 수업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그동안 엄청난 압박에 시달렸던 기자재 문제부터 기타 자잘한 모든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되었다. 우리는 모두 박수를 쳤고 들어왔을 때와 같이 취업부장님은 쿨하게 나가셨다.
그 뒤로 회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일도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정보부에서는 줌 수업방을 위한 가상 계정을 만들고, 교무부에서는 3학년 한과가 한 번에 수업할 수 있도록 시간표를 짜고, 각 학과에서는 실습실을 열어 수업방을 꾸미기 시작했다. 담임 선생님들에게는 학생들의 줌 학교 계정을 만들기 위한 안내를 부탁드리고 기자재를 세팅하고 시연을 해보았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래간만에 들은 아이들의 목소리는 무척 밝았다. 급한 데로 줌 수업환경을 만들고 작년에 담임했던 아이들과 친했던 3학년 아이들에게 연락해 시연 수업에 참여시켰다. 전 교사가 원격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줌으로 하는 첫 수업 시연이었다. 아직 감을 못 잡은 인문 교과 선생님들을 위해 과거 수학 교사였을 때 했던 수업 자료를 가져와 시연을 했다. 아이들은 그동안 집에서 답답했는지 학교에 오고 싶다고 졸랐다. 다 큰 아이들의 애교에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동안의 고생이 보상받는 것 같았다.
그 시연 수업은 상당히 큰 의미를 가졌다. '그게 정말 되겠어?' 회의적으로 보던 교사들도 '이게 되는구나' 하는 깨달음과 함께 본격적으로 원격 수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친한 선생님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세팅된 실습실을 찾아가 수업을 어떻게 할지 논의하고 저작권 문제부터 교과서와 교재 문제까지 학교가 시끄러웠다. 코로나 19로 죽어 있던 학교가 활기를 되찾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