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적인 3학년 온라인 개학 5일 전에 우리 학교의 원격 수업 시스템은 구축되었다. 나는 나 혼자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진작 깨닫고 2명뿐인 부원 분들에게 일을 배분했다. 일단 분 단위로 질문을 쏟아 내는 교사들을 묶어 멘토-멘티를 지정하고 질문 체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최종 교사 문의는 실무원님께, 학생과 학부모 문의는 부서에 계신 선생님께 일임했다. 나에게는 더 급한 문제가 있었으니 학생 스마트 기기 대여 문제였다.
우리 학교에는 상당히 많은 저소득층 아이들이 다니고 있었다. 통신비의 경우 이미 관례적으로 인터넷통신비 지원을 하고 있지만, 몇몇 학생들은 달랑 스마트폰만 있고 원격 수업을 할 컴퓨터나 태블릿조차 없었다. 게다가 다자녀 가정의 경우 형 누나에 밀려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참 많았다. 그래서 공문으로 온 스마트 기기 대여를 적극 활용해 신청이 들어오면 적극적으로 교육청에서 대여를 신청했다. 이 건으로 교육청 주무관님을 참 많이 괴롭혔던 것 같다.
계속되는 주문에 힘들어하는 주무관님들을 설득할 때 가장 많이 썼던 말이 '학교와 교육청은 학생에게 교육을 제공하는 데 그쳐서 안 되고 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학교와 교육청'을 주어로 두고 한 말이었지만 결국 그 말은 코로나 시대에서 '교사'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나에 대한 자문자답이기도 했다.
클라우드를 이용해 상시로 스마트 기기 대여 신청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후 한숨 돌린 후 다시 기자재 문제로 돌아왔다. 이제 전 학년이 시작될 텐데 그에 대한 장비를 하나도 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완벽한 매뉴얼과 계획서'를 바라는 공무원 조직은 앞으로 일어날 일이 99%라면 1% 때문이라도 그 일의 진행을 좌절시켜 버리고 말았다. 가장 어려운 것은 바로 행정실이었다.
교사인 나는 교육활동을 중심으로 모든 생각이 돌아간다면 그들은 1원 한 장 맞추는 것에 모든 생각이 돌아가는 것 같았다. 게다가 정보부 자체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여 반드시 전문부 예산을 써야 하는데 그분도 꽉 막히기는 마찬가지이고 관리자 분들도 '완벽'하지 않은 예산에 단지 어린 부장의 치기만 믿고 선뜻 돈을 쓰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러지 않더라도 우리 학교는 이미 원격 수업에 대해 선진적인 학교로 주변에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화가 났다.
그날도 화가 난 채로 회의에 참가했던 것 같다. 아무리 말을 해도 들어주지 않는 교장, 교감, 전문부, 행정실까지... 눈 앞에 서성이는데 열이 안 받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다른 부장님들 이야기를 들어 보니 특성화고 사업으로 억대의 돈이 내려왔다고 한다. 어차피 원격 수업도 각 과의 수업의 일환인데 벽에 페인트칠하지 말고 이런 거나 사주었으면 좋겠다. 이심전심,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길게 늘어진 회의 실에서 나의 차례가 왔다. 나는 준비한 자료를 들고 원격 수업 준비 상황에 대해 줄줄 읊다가 기자재 이야기를 했다. 서두를 꺼내자마자 교장 선생님이 불편한 이야기는 나중에 듣자고 한다.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올라오는 빡침과 함께 나는 교장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들으세요, 들으셔야 합니다.
지금 교사들은 웹캠도 하나 없이 원격 수업에 던져졌다. 마치 분필 한 자루 주지 않고 칠판 수업을 하라는 것과 같은 지금 이 상황이 말이 되는가? 행정실에 이야기하고, 교장 교감 선생님한테 이야기해도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된다. 이런 이야기들을 하지 않으면 도대체 회의란 것은 왜 있고 관리자란 왜 있단 말인가? 그저 불편 사항 숨기고 좋은 말과 의례적인 인사만 할 거라면 도대체 왜 회의를 하는 것인가? 선생님들은 지금도 학생들을 상대하고 원격 수업 준비하느라 너무나 힘들다. 그런데 장비 하나 제대로 주지 못하고 원격 수업을 하라고 한다면 이게 말이 되는가?
뚫린 입에서 그동안 쌓였던 말들이 술술 나왔다. 공개 석상에서 이렇게 화내는 사람은 처음인지 회의실은 정말 얼어 버리고 그동안 내 말을 씹었던 행정실장님과 전문부장님은 고개를 숙였다. 놀라운 것은 그다음 일어났는데, 바로 행정실장님이 사과를 했고(다소 다른 이유이긴 했지만) 관리자 분들은 내 말을 들어주었다. 그 뒤로도 몇 차례 쌈닭이 되었지만 결국 내 이야기는 관철되어 전문부의 예산을 써서 전 교사에게 웹캠과 펜타블릿을 사주고 몇 가지 필요한 기자재를 더 살 수 있었다. 대부분 국내에는 재고가 없어 해외 배송을 시켰는데 주변 선생님들과 실무원님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다만 배송이 매우 느려 그로부터 한 달 뒤에 우리는 웹캠과 펜타블릿을 받아 볼 수 있었다.
솔직히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다른 학교에서는 화를 내도 전혀 들어주지 않고 보복을 하던데 이 학교는 화를 내면 들어주고 일이 해결이 되었다. 그 뒤 나는 일부러 화난 척을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매우 고맙고 감사했다. 하지만 예산을 더 써야 하는 처지라 절대 티는 내지 않고 속으로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