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 입성

by 수리향

어제 선양의 호텔 격리를 끝내고 연길서역으로 향하는 기차를 타고 연길시로 들어왔다. 호텔에서 2시 40분 쯤 출발해서 선양북역에 모여 같이 기차를 탈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격리되어 있었다. 자물쇠로 잠긴 펜스 안에서 멍 때리고 있다 보니 반가운 얼굴들이 눈에 띄였다. 2주 전 선양행 비행기를 같이 타고 온 조선족 분들이었다. 타지에서는 한국말만 들어도 한번 보았던 사람들을 만나기만 해도 반가운 마음이 샘 솟는가보다. 신나게 그 동안 호텔에 격리되었던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열차에 탑승할 시간이 되었다. 짐작은 했지만 같은 열차를 타고 연변으로 가신다고 한다. 인솔하시는 분 말을 못 알아 들어서 그냥 조선족 아저씨로 좌표를 잡고 쫓아서 열차에 무사히 탑승했다. 고속열차는 한국의 KTX보다 빨라서 자주 귀가 먹먹해진다. 가끔 터널이 아닐 때 천천히 달리는데 밖이 너무 깜깜해서 점점히 스쳐 지나가는 붉은 빛의 무리들을 보며 그곳의 풍경을 상상하고 있었다. 열차가 터널을 지나면 엄청 고속으로 달리는데 LTE가 터지지 않아서 그 흔한 인터넷도 안 되었다. 열차 내 와이파이가 있는데 중국 사람이 아니면 막 튕겨내는 지 여러번 시도하다 실패하고 다운 받은 책을 보다 말다 했다. 저녁 때가 되자 간단히 공쳐둔 도시락으로 요기를 하고 동행인 선생님들과 수다를 떨었다. 장춘을 거쳐 연길서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10시가 넘은 시점이었다. 연길서역은 그 동안 보아왔던 큰 중국의 역사와는 달리 아담한 편이었다. 겨우 짐을 내리고 삼삼오오 기다리며 연길과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길에 사시는 조선족 분들은 중국말과 한국말 모두 유창해서 역사에서의 통역도 해주셔서 수속이 빨리 끝났다. 우리는 여느 때보다 수월한 수속에 속으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제 격리 호텔로 이동을 해야 하는데 40분 정도 더 기다려야 한단다. 텅빈 역사에 방역요원 분들도 어디 갔는지 사라지고 우리는 방치되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라 춥고 배고프고 약간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 때 조선족 한 분이 빵을 꺼내 나누어 주었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더라. 나도 먹을 게 있기는 한데 너무 적어서 꺼내기가 민망했다. 타지에 와서 어리버리한 건 당연한데 이렇게 도움만 받으며 가야 하다니 내가 바보 같기도 하고 그렇게 선뜻 도와주시는 분들이 있어 너무 감사했다. 조선족 분들 대부분은 연길 토박이셨고, 서울에서 여러 해 계셨던 분들도 있어 서울과 연길 이야기를 하면서 재미있게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그렇게 수다를 떨다 버스로 호텔에 이동했는데 도착했을 즈음에는 거의 자정이 가까웠다. 다들 지치고 힘든 와중에 조선족 아저씨들은 짐도 들어 주시고 (버스 턱이 너무 높아서 내 힘으로는 캐리어를 올리고 내릴 수가 없었다) 호텔 수속할 때도 본인들 다 하셨는데 올라가지 않고 우리를 기다리며 수속을 도와주셨다. 격리 호텔은 총 7군데가 있는데 일찍 들어 올수록 좋은 호텔에 들어간다고 한다. 우리는 그 날 6번째 들어와서 6번째 좋은(?) 호텔에 묶게 되었다. 호텔은 하루 260위안으로 선양의 호텔의 반값이었는데 선양의 호텔에 비해 방의 퀄리티는 많이 떨어지는 편이지만 호텔 분들도 너무 친절하고 프론트에 조선족 분이 있어서 의사소통도 쉬웠으며 무엇보다 같이 오신 분들도 같은 호텔에 묶어서 참 든든했다.


도착하고 짐을 대충 풀었더니 자정이 넘었다. 호텔에서 저녁으로 먹으라고 준 중국 컵라면은 얌전히 모셔두고 화장실로 가서 샤워필터를 교체하고 세면대에 수도필터를 끼우려고 했다. 다행히 규격은 맞는 것 같았다. 근데 수도를 잠그는 부분이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10층이라 수압이 그렇게 세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잠그는 부분이 뻑뻑해서 조금 물을 빼고 나면 괜찮겠지 안일한 생각으로 수도관을 열었다. 그리고 아뿔사, 화장실은 순식간에 물바다가 되었다. 엄청난 속도로 콸콸 쏟아지는 찬물을 맞으며 몸도 젖고 발바닥이 차갑게 시렸다. 무엇보다 수압이 너무 세서 다시 수도관을 연결하려 해도 불가능했다. 잘못하면 호텔 방도 물바다가 될 것 같았다. 대충 세면대 아래 가림막을 옮겨서 화장실 문으로 향하는 물들을 하수구로 돌리고 프론트에 열심히 연락을 시도했다. 밤에는 한족 분이 프론트를 보아서 중국말로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데 맑은 정신으로도 어려운 중국말이 그 정신에 제대로 될리가 없었다. 손이 물이 젖어 파파고에 부들부들 말을 적어 보아도 계속 오타만 나고 중국 성조도 눈에 하나도 안 들어오고 죽을 것 같았다. 결국 프론트 전화를 끊고 조선족 아주머니께 연락을 드려서 현 상황을 설명하고 호텔 직원을 불러달라고 부탁드렸다. 새벽 1시인데도 아주머니는 감사하게도 전화를 받아주셨고 호텔 직원 분이 올라왔다. 호텔 직원 분은 딱 봐도 내가 잘못한 상황인데 별 말 없이 수도관을 잠그고 화장실도 깨끗하게 치워주었다. 너무 죄송하고 송구스러워서 내가 하겠다고 열심히 말려 보았는데 젖은 옷을 갈아 입으라고 하고, 꿎꿎이 치우고 가시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반성을 많이 했다. 이곳의 수도관의 잠금 벨브는 한국에서와 달리 방 밖에 위치해 있었다. 이곳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함부러 손을 대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한번 쯤 호텔에 문의해보았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만만하게 보았던 것 같다.


그렇게 감사한 직원분이 돌아가시고 젖은 옷을 벗고 대충 샤워를 한 후 자리에 누웠다. 새벽 2시반이었다. 피곤한데 드디어 입성했다는 생각. 나는 참 바보라는 생각이 뒤엉켜 있었다. 한국에서는 참 앞가림도 잘 하고 일도 잘 하고 그런 사람이었는데 여기와서 첫날부터 사고나 치고…. 앞으로도 어리버리가 계속 될 것 같은데 아이들은 어떻게 가르치며 학교에는 잘 적응할지 걱정이 새록새록 솟아 올랐다. 그러나 저러나 어쩌나, 이미 와버린 것을. 어떻게든 잘 되겠지 간만에 대책 없는 생각을 하며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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