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절이 공식적으로 뿅 하고 지나갔다. 하지만 간간히 울리는 폭죽 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은 아직 춘절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요즘은 새벽 어스름이 밝을 즈음 윗집의 샤워 소리에 아침을 시작한다. 샤워 소리가 바로 들리는 건 아니고 하수구가 내 집 다락방에 있는 작은 창고를 지나서 물 흐르는 소리에 잠이 깰 수밖에 없다. 물소리에 비몽사몽 정신이 들 때쯤 알람이 울리고 미적미적 밑으로 내려가 커피 한 모금과 사과를 한입 베어 물며 미적미적 뉴스를 뒤져본다. 주로 한국 뉴스를 보지만 연변일보도 같이 본다. 중국의 소식을 한국어로 볼 수 있다니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매우 유용한 신문이다.
연길의 해는 빠르게 뜨는 편이라 6시 반만 되어도 밖이 잘 보인다. 사람들도 덩달아 부지런해서 아침부터 운동하고 출근하는 모습에 눈에 뜨인다. 내 집의 창은 도로변으로 나있는데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그리 좋은 향은 아니지만 격리 생활 중에는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연길은 신기한 동네라서 간판에 중국어와 한국어 표기가 병행되어 있다. 그래서 가끔 멍 때릴 때에는 여기가 한국인지 중국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차는 현대차도 보이고 일본차, 아우디, 폭스바겐도 자주 눈에 뜨인다. 번호판은 대체로 연길의 ‘길(吉)’ 자로 시작하고 영문, 숫자가 뒤따른다. 번호는 신기하게 홀수가 많다. 동양에서는 홀수가 길한 숫자라서 그런 걸까? 아직 표본이 몇 개 안 되므로 좀 더 관찰해봐야 겠다. 참고로 한국의 면허증을 가져오면 여기서 한글로 필기만 보고 운전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혹시 중국에 올 일이 있으면 꼭 면허증을 지참해서 오기 바란다.
이번 주는 마지막 격리기간이기도 하고, 한국에서 재외국민학교 신임 교사들을 위한 연수 기간이기도 하다. 알면 알 수록 재외국민교육기관이라는 것이 한국과 사정이 많이 다르고 참 다양하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여기서 자라난 아이들은 현지의 문화적 자본을 잘 취득한 아이들인데 이 인재들을 한국으로 잘 모셔가지 않으면, 국력 낭비라는 생각도 든다. 그 점은 교육부에서도 인지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예산 부문은 한국이 우선이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없어 한국과 달리 학비도 유상이고 재정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다행인 점은 해외에 지원하는 교사들 대부분이 (인력풀이 제한적이긴 하지만) 많이 깨어 있고 수업 연구와 교육활동에 적극적인 분들이 많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것도 지원 교사가 많은 경우에 한하며 이곳에서는 한 교사가 전 학년 수업을 들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교사의 열의에만 기대기에는 많은 한계점이 있다. 예를 들어, 나와 같은 수학교사는 통상 중고등학교 걸쳐서 한 학기에 5과목 정도의 수업을 들어가게 된다. 이것은 학생 수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은데, 학년 당 학생 수가 적다 보니 한 학년이 한 개 반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한국에서와 같이 수업 시수(20 시수 기준)에 따라 교사를 채용하다 보니, 한 교사가 여러 학년과 과목을 도맡게 되는 것이다. 초등의 경우는 그래도 나은 편이라 한 개의 반(학년)을 전담해서 가르치면 된다고 한다. 이래저래 일도 많고 국제학교와 같이 입시 경쟁을 하는 입장에서 학부모들의 요구도 많다 보니 교사들은 많이 힘들고, 코로나 때문에 경쟁률은 점점 낮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나도 코로나를 감안하고 출국을 했는데 격리와 방역으로 많은 돈과 시간을 소비하다 보니 많이 지쳐있다. 그냥 즐거움을 위해서 재외국민학교에 지원했다면 대부분 견디지 못하고 한국으로 조기 입국한다고 한다. 재외국민학교에 지원하고자 하는 선생님들은 꼭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과 희생해야 하는 것을 잘 견주어 보고 결정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