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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 수업 4일 차

by 수리향

아파트가 봉쇄되었다. 어제 2차 핵산 검사 결과가 좋지 않았던 것 같다. 더 강한 조치에 대한 공고문이 뜨고 내일부터 모든 마트가 봉쇄된다. 공지가 뜨자마자 부랴부랴 외투를 걸치고 단지 내의 마트로 달려 나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높은 단지 문에 사람들이 매달려 배달받은 물건을 받고 있었다. 아파트 현관에는 동호수가 적힌 종이 몇 장이 붙어 있었다. 파파고로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확진자의 동호수 같았다. 그렇다면 생각보다 상황은 심각한 것이고 3월 한 달은 봉쇄가 예상된다. 이번 달은 망했다.


어제 핵산 검사받는 길에 물 2박스와 생필품을 사긴 했었다. 물 2 상자를 나르느라 손에 든 멍이 지워지기도 전에 물건을 사러 가야 한다니 슬프지만, 생필품은 이상하게도 격리만 시작되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는 것 같다. 일주일 정도 살아남을 식량은 있기 때문에 대충 주전부리를 사고 물통도 채워 넣었다. 나는 주로 동그란 7.5리터짜리 생수통을 이용하는데 물이 떨어지면 물통을 버리지 않고 마트에 가져가 새 물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물통의 야진(보증금)이 비싼 편이라 여러 개 살 수 없고, 격리가 길어질수록 그냥 버리는 생수 박스가 더 유리하기 때문에 물 사다 먹는 방식을 바꾸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물론 집에 브리타 정수기가 있어서 급하면 그걸로 정수해서 끓여 먹으면 되지만 그건 정말 급박한 상황일 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이 물도 얼마나 갈까 하는 고민이 덮쳐왔다.


여기 와서 참 오랜 격리 기간을 거치고 또 격리에 들어가다니. 이제 막 은행 계좌도 트고 위챗 페이도 되어서 행복했는데, 다시 격리에 들어가다니 조금 슬프기도 한다. 지겨운 격리 기간에 그나마 수업이라도 하니 다행이긴 하다. 아이들도 원격 수업이 슬슬 지루해지는 것 같아서 내일 즐거운 음악과 함께 풀 퀴즈를 조금 만들었다. 나는 집에서도 일을 하지만, 상점이나 관공소 분들은 집에만 있으면 답답할 것 같다. 이번 3차 핵산 검사 결과가 나오면 길상마에 정보가 업데이트되어 그걸로 외출이 허용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외국인이고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길상마가 없다. 내일 핵산 검사에 참여해도 길상마가 없으니 무용지물. 병원에 가서 검사지를 3차례 받아 오라고 하는데 그러려면 봉쇄를 뚫고 병원에 다녀와야 한다. 그냥 마음 편하게 집에서 격리 생활이나 해야 하는 것일까? 외국인이 타지에서 생활하는 것은 참 쉬운 일이 아니구나, 깨닫는다. 참 속절없이 하얀 눈발만 예쁘게 흩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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