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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수업 7일차

by 수리향

연길의 하늘은 무척 맑다. 근래 날도 풀려서 화창한 햇살을 보자면 밖으로 나가 배회하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하지만 엄연한 봉쇄 기간에 그런 민폐를 끼칠 수 없어서 쓰레기도 버리러 가지 않고 얌전히 집에 박혀 있다. 어제 검사장은 이전보다 한결 정돈된 모습이었다. 정확히 2개의 동씩 나와서 줄을 서 있었는데 잘못 줄을 서면 한참 기다렸어도 다시 뒤로 돌아가야 한다고 한다. 엄격해진 규칙 덕분에 전날보다 핵산 검사가 빠르게 끝났다. 문제는 오늘 핵산 검사 일정이다. 어제 일정표가 나와서 겹치는 수업 시간의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했는데 갑자기 일정이 변경되어서 방송으로 부르면 나오라고 한다. 이런 난감할 때가 있나.


하지만 여기에도 사정이 있다. 확진자와 접촉자들이 늘어나면서 지역사회 간호인력이 차출된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확진자가 엄청 많은 것 같지만 연길 시 확진자는 현재 7명이다. 아파트에 붙은 종이의 정체는 그냥 접촉자들이었다. 하긴 연길이 아무리 작아도 확진자 절반이 이 아파트에 있다는 것이 말이 안 되기는 하다. 아무튼 그 접촉자들은 밤에 자다가 접촉자로 분류되어 엠뷸런스에 실려 갔다고 한다. 7명이라고 해도 생활 접촉자가 1명 당 100명은 될테니 그 수용 인원에 간호 인력을 배치하면 지역사회 검사 인원이 적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 같다.


벌써 만 일주일 된 원격 수업은 평온하게 흘러가고 있다. 핵산 검사로 휴업을 하는 학교도 있던데 우리 학교는 학생 인원수가 적어서 별로 해당 사항이 없다. 핵산 검사로 빠지는 학생들이 한 시간에 1-2명 있는데 적어두었다가 수업 녹화한 것 올리고 필기를 검사하고 있다. 문제는 내가 핵산 검사 받으러 갈 때인데, 공강에 시간 딱 맞으면 좋겠지만 그런 게 쉬운 일이 아니라서, 그냥 양해를 구하고 과제로 돌리거나 자습을 시킨다. 원격 수업을 하니 좋은 점은 원격 수업 업무 외에는 행정 업무가 줄었다는 점이고, 안 좋은 점은 학생들을 대면할 수 없으니 위챗으로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데 10명 정도라지만 손가락으로 대화하는 게 그리 원활하지는 않다. 물론 보기보다 어메리칸 스타일이라 뭘 줘도 다 잘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챙길 것이 많은 것 같다.


원격 수업 때문에 가장 안 좋은 점은 기대하던 동아리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동아리 조직이 끝나고 다음 날 봉쇄 통보를 받아서, 시작도 전에 막혀버렸다. 1년치 창체 일정을 다 잡아 두었는데 담당 교사들은 원격으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하고 결국 영화 보기 창체로 다 교환했다. 어제는 동주를 보았다. 일정에 의하면 5월 쯤 윤동주 행사가 있을 때 즈음 보기로 했는데 어쩌다 순서대로 보다 보니 많이 이르게 본 것 같다. 윤동주도 이곳 출신이다. 윤동주의 학창시절을 보면서 그와 같은 나이에 같은 땅을 밟으며 학창시절을 보내는 아이들이 참 특별하게 보였다. 이곳은 춥고 땅이 척박하지만 사람들이 맑고 건강한 곳이다. 윤동주와 그의 친구 송몽규가 계속 북간도에 있었다면, 그래서 연희전문학교에서 좌절하지 않고 후쿠오카에서 죽지 않았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그들의 후손들이 이곳 연길에 혹은 한국에 살고 있을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조례나 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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