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전쟁

원격 수업 대응기, 여덟 번째 이야기

by 수리향

1,2,3학년 등교와 원격 수업을 병행하게 되면서 우리는 완벽한 환경이 갖추어진 실습실에서 다시 교실로 돌아갔다. 교실은 실습실과 달리 교단선진화 장비가 다소 낙후된 편이었고 무엇보다 모니터가 컴퓨터 책상 안에 빌트인 형식이라 수업하는 교사들이 많이 불편해했다. 웹캠도 놓을 수 없고 서브 모니터를 살 비용도 놓을 곳도 마땅치 않았지만 교사 분들은 '완벽한 기자재는 없어도 된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주었다. 어차피 다른 대안도 없거니와 불편한 것은 감수하면 되는 일이었다. 1학년 1반부터 2학년 12반까지 모든 반이 가상 계정을 만들고 실습 교과에서 필요하면 호스트를 넘겨받아 실습실에서 수업하도록 매뉴얼을 만들어 가볍게 연수를 해주었다.


나는 원격 수업에서 반드시 웹캠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 100개의 웹캠을 사서 뿌렸는데 막상 해보니 가장 먼저 끄는 게 웹캠이었고 가장 필요한 것이 서브 모니터와 좋은 마이크였다. 교실 수업에서 굳이 웹캠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우리는 일단 정보부에서 관리하는 멀티실에서 사용하는 헤드셋을 풀어서 각 교실에 세팅하고 남은 펜타블릿을 모든 교실에 설치했다. 다행히 이미 원격 수업에 많이 적응했던 교사들은 교실에서 하는 수업에도 어렵지 않게 적응했다. 하지만 장비가 그리 좋지 않다 보니 좀 폼이 안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을 다 사려면 예산이 어마어마하게 들기 때문에 어려웠다. 이게 장기화되면 모를까 모든 교실에 있는 장비를 모두 교체하는 일은 시간적으로나 예산적으로나 불가능했다.


참 재미있는 것은 코로나 19로 정보, 체육, 보건은 마이너스 예산으로 엄청나게 고생한 반면 다른 부서들은 학생이 오지 않아 모든 활동이 정지되어 돈을 쓸 여지가 없었다. 교육청에서 활발하게 밀던 교사 동호회도 각종 대회들도 모두 잠정 중단되고 그 예산은 고스란히 원격 수업으로... 가지 않았다. 우리 학교의 경우 나처럼 싸움을 해서라도, 체육과 보건을 천에 가까운 마이너스를 찍어서라도 물건을 샀는데 다른 학교는 어떤지 모르겠다. 교육청에서 1차 추경에 대한 공문이 7월에야 오고 우리는 숨 넘어가기 직전에 예산을 다시 수혈받을 수 있었다.


행정실과 무던히 싸우던 나는 중구청에서 따온 사업 계획서를 수정하여 3D 프린터와 각종 장비들을 살 예산을 모두 원격 수업으로 돌려 버렸다. 다른 부서에서도 상당히 협조적으로 안 쓰는 예산을 모두 반납해서 예산 때문에 그 후 잡음은 없는 것 같다.



7월에는 반가운 소식이 많았는데 2학기부터 국회로부터 추경이 통과되어 AP가 설치되고 노트북이 지급되는 등, 원격 수업 예산이 드디어 내려온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나 아직 오지 않은 예산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 나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심정으로 돈을 썼던 것 같다. 원격 회의 장비를 갖추어 달라는 교장실의 요청과 교감 선생님의 압박에도 굴(?) 하지 않고 버텼다.


사실 원격 수업을 가장 잘한다고 소문난 우리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의 장비는 가장 후졌다. 우리 학교의 얼굴인 교장 선생님께서 아직도 우주선 조종사처럼 큰 헤드셋을 쓰고 있다는 놀림을 받았다고 웃으며 이야기하는데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원격 수업을 지지해주고 돈을 쓰라고 최종 결재해준 분도 교장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에 걸맞은 기자재를 사려면 적어도 20만 원은 들었고 그 돈이면 교사들 헤드셋 10개는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매달 소모품을 갈아 치우는 이 원격 수업에서 헤드셋뿐 아니라, 교실 내의 프로젝터와 분배기, 모니터, 본체에 자꾸 수리할 일이 생겨서 생각보다 돈이 많이 나갔다. 정보부에서 첫 번째 할 일은 교장 선생님 회의를 챙기는 것이 아니라 일반 교사들의 수업을 서포트해주는 일이었다. 결국 차순위가 된 교장 선생님은 그 뒤로도 조종사 소리를 들으며 원격 회의에 참석했더랬다.


다행인 것은 생각보다 빨리 예산이 내려왔다. 돈이 많아진 나는 마음이 넓어져서 남은 돈으로 교장 선생님의 장비부터 샀다. 회의하다 노래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아주 좋은 마이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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