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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절

by 수리향

잘 지내고 있다. 중국은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단오절 연휴로 뜻하지 않게 내내 잘 쉬고 있다. 단오절 내내 비가 왔다. 이곳은 내륙성 기후라 항상 건조했는데 수분을 가득 머금은 공기가 참 신선해서 한국의 날씨처럼 느껴진다. 아 물론 이곳은 한국보다는 덥지 않고 적당한 봄 날씨를 유지하고 있으니 날씨는 더 좋은 것 같다. 봄을 이렇게 오랫동안 느껴본 것이 언제였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날도 적당하고 단오절이라 해도 어디 나갈 수는 없다. 코로나 확진자가 한둘 씩 올라와서 부분적인 봉쇄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보름 전, 생각 없이 버스를 타고 용정에 다녀온 후 딱 걸려서 3일 자가 격리에 들어간 적이 있다. 집에서 근무하니 몸은 편한데 남들 출근할 때 혼자 갇히는 것이 그렇게 좋은 게 아니더라. 가고 싶은 곳은 많지만 괜히 어디 돌아다녔다가 또 격리될 것 같고 어차피 몸도 별로 좋지 않고 그냥 약 먹고 잠만 잤다. 연휴 전날에 두통에 시달렸는데 연휴인 걸 몸이 자각하고 쉬자고 그랬던 것 같다. 푹 쉬고 나니, 더더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이제 출근 준비를 해야 한다.


학교는 다행히 12학년은 등교 중이고 나머지 학년들은 일주일 전부터 원격 수업 중인데 순차적으로 등교하라는 시교육국의 통보가 왔다. 아무래도 국경 지대가 가까운 곳이라 코로나 통제가 어려운 것 같다는 느낌이다. 오늘도 연휴 마지막을 맞이 해 핵산 검사를 하고 왔다. 이제 길상마가 생겨서 빠르고 편하게 핵산 검사를 받을 수 있다. 물론 그 덕분에 행동반경에 제약이 생겼지만, 중국에서는 중국의 법을 따라야지. 간혹 중국의 엄격한 통제 정책에 대한 비판이 많은데, 생필품과 음식 보급이 잘 되면 생각보다 불만이 없다. 유독 튀어나오는 부분을 크게 보도해서 그렇지 이곳 사람들의 생각은 ‘국가에서 알아서 할 텐데 왜 그러지’ 하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중국이 다양하고 넓기는 하지만 중국의 분위기와 생각을 좀 편향되게 전달하는 언론도 문제인 것 같다. 한국의 잣대로 이곳을 평가할 수는 없다. 한 나라가 통치 철학을 결정하는 데는 오랜 역사와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을 타국인이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것 같다. 무엇보다 이곳 사람들은 잘 살아간다. 나도 그렇고. 우리네 사람이 살아 가는데 필요한 것은 이념 같은 것이 아니라는 걸 몸소 깨닫는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사실 코로나도 이념도 아닌 그냥 일이 많고 심지어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곳의 수업 시수로는 수학 교사가 2명이 필요한데 현재 이곳에 수학 교사는 나 1명뿐이다. 나머지 시수는 현지에서 강사를 채용했는데 계획부터 평가까지 모든 실무는 결국 다 내 손에 떨어지게 되더라. 요즘 학급에 일도 많은데 강사 한 분이 갑자기 일을 그만두게 되어서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다. 이곳은 중국에서도 외진 곳이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곳이라 한국에서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다. 이곳에 오신 선생님들 하나씩 이유가 있지만 오래 버티려면 입시를 치르는 자녀가 있거나, 교육관에 입각한 봉사 정신이 없이는 많이 힘든 것 같다. 주요 과목의 경우 교사가 2명인데 나머지 과목은 교사가 1명이고 강사로 시수를 채우는 경우도 많다. 이래 저래 어렵지만 또 한국식 교육과정을 따르고 한국식 행정 절차를 따르다 보니 힘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거고 한 사람이 아쉬운데 관리자는 열정 페이만 외치고 학부모는 교사를 피고용인으로 보고 요구 사항이 많아 힘들게 한다. 워낙 지역적으로 좁다 보니 불필요한 말이 오가고 사람들이 서로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 같다. 작고 사람이 부족할수록 한 사람 한 사람 아쉬워해야 하고 더 배려해야 하는데 그런 게 부족한 것 같다.


나는 이곳에 온 이유를 달성했던가. 궁금했다. 간도로 간 그들이, 이곳을 떠나지 못한 그들이 잘 살고 있는지. 그리고 왜 한국은 그들에게 왜 그러는 건지. 와보고 깨달았다. 그들은 잘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잘 살 것이란 것을. 그리고 한국이 그랬던 이유는 서로의 이념이 달라서였음을. 사람이 태어나 자라 보니 그 땅에 뿌리를 박은 것은 누구의 선택도 아닌데 그런 이유로 서로를 미워해야 하는 것인지. 한 국가를 보이지 않게 감싸고 유지하는 것이 이념이라 하지만 그 이념이 사람을 뿔 달린 붉은 짐승으로 만든다면 그 이념을 지키는 방식이 과연 옳은 것인지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 싶다. 그냥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냥 우리의 말과 귀가 그런 사람들을 만든 것뿐이었다. 물론 그 말과 말이 오래되다 보면 정말 그런 사람이 하나 탄생하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몸소 경험했듯이. 이미 우리는 그것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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