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양역에 도착하니 오전 6시. 아직 시간이 좀 남아서 커피를 타 먹었다. 컵은 호텔에서 한번 쓰고 버리기 아까워 가지고 나온 거.
믹스 커피 한잔의 여유
내가 커피를 타 마시니 사람들이 부러워하며 종이컵의 출처를 묻는다. 중국말 몰라서 답변을 못 했는데 아침의 믹스 커피는 스벅이 부럽지 않더라.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
산과 들을 건너 베이징 조양역에 도착했다.
주변이 황량해서 천안문이 있는 호텔로 이동했다. 자전거를 이용했는데 도로가 위험하고 복잡해서 자전거는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여차저차 호텔에서 짐을 풀고 천단 공원으로 향했다.
천단
입장료는 34위안이다.
한오백년 살? 나무
명나라 영락제(태종 이방원과 친하다던 그) 때 만들어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명나라 때뿐 아니라 청나라 옹정, 건륭제 때도 사용했다고 나와 있다. 해설을 알아들은 게 아니고 사진에 나오는 용안들이 모두 아는 얼굴... 중드를 열심히 보다 보니 의도치 않게 상식이 풍부해진 것 같다.
제사 지내러 올라갑시다
천단은 대한제국의 환구단과 비슷한 것 같다. 과거 황제를 칭할 때에는 황제 위에 높은 이가 없어 하늘에 제를 지내서 고했다고 한다. 고종황제가 만들었던 대한제국의 환구단은 흔적만 남아서 서울의 어느 호텔 앞마당이 되었는데 중국의 천단은 대대적인 복원 사업을 통해 웅장한 모습을 되찾았다. 조금 씁쓸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천단에 한 계단씩 올라갈수록 압도당한다는 느낌이 든다. 불교 건물인 듯하면서도 도가적 사상이 건물 곳곳에 묻어 있다. 삼생삼세 십리도화의 야화가 제를 지내면 딱일 것 같은 곳이다.
천단의 사방에는 문이 있는데 남쪽으로 내려가면 신주를 모시는 황궁우가 있다.
황궁우 위에는 암 것도 없고 그냥 평평한 단이다. 삼생삼세의 백천이 푸른 옷을 입고 춤을 추면 딱일 것 같은 곳인데 현실은 티셔츠를 입은 관광객들이 사진 찍느라 만원이라...(낭만 파괴) 그냥 내려갔다.
여기는 영어로 Eco Hall, 회음벽이다. 건물이 에코가 아니라 벽이 에코라는데 사람들이 벽에다 대고 뭐라 뭐라 혼잣말을 하는 광경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서쪽에 궁이 하나 있어서 공원을 돌아 들어갔다. 아무렇게나 우거졌던 선양의 나무들과 달리 베이징의 나무들은 반듯반듯 칼같이 각이 잡혀 있다.
수로가 있는 궁이다. 지금은 풀이 무성하다.
동쪽으로 길을 잡고 천단을 빠져나왔다. 밖에 나오니 슬슬 해가 지는 시간이다. 베이징은 낮은 엄청 더운데 저녁 때는 금방 선선해져서 오히려 돌아다니기 좋았다. 내일 자금성을 볼 예정인데 천안문은 미리 보고 싶어서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섰다.
천안문 가는 길에 왕푸징 거리를 지났다. 예쁜 건물들이 많은데 실제 사람들이 살거나 공적 공간으로 이용해서 함부로 들어갈 수는 없다. 하지만 거리가 무척 예뻐서 결혼사진 찍으러 온 커플들이 눈에 뜨인다.
드디어 천안문이다. 천안문과 인민 기념비는 큰 도로를 가운데 두고 마주 보고 있는데 도로의 차도 자전거도 절대 멈출 수 없고 앞만 보고 가야 한다. 이 구간이 워낙 넓다 보니 걷기보단 자전거 타고 둘러볼 생각이었는데 멈출 수 없다니..!
천안문
인민기념비
결국 천안문을 지나쳐 한 참 뒤 유턴을 하고 인민 기념비 쪽을 지날 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절대 멈추면 안 된다니까 한 손에는 핸들 한 손에는 폰을 들고 아슬아슬 곡예를 했다. 나 말고도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끝나고 호텔 돌아오는 길에 국수를 사 먹었다. 여기까지 와서 리 선생(체인점)이라니... 여행 때문에 길에서 빵으로 대충 때울 때가 많아서 제대로 된 식사는 오랜만인 것 같다.
어둑해지니 비가 오기 시작한다. 빗소리가 시원하다. 내일은 비가 많이 오지 않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