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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여행 15일 차

고산병과 에베레스트

by 수리향

2022.08.02.


고산병이 가장 심할 때가 언제일까? 바로 해가 없는 밤이다. 정확히 해가 진 후부터 동트기 전까지 길고 긴 시간을 고통의 시간이 시작된다. 어두운 호텔 방 안에서 두통에 시달리며 초침을 바라볼 때만큼 시간이 느리게 가는 때가 있을까? 이때만큼은 그 비싼 약도 진통제도 듣지 않는다. 그렇게 긴 밤을 보내고 멀리서 여명이 비칠 무렵 거짓말 같이 열이 내리고 까무룩 잠이 든다. 낮에는 증상이 좋아져 멀쩡하게 돌아다니지만 차에서는 잠 보충하느라 기절하는 일상. 점점 고산병이 오는 시간이 더뎌지고 증상이 경미해졌지만 밤은 길었고 그런 일상을 티베트에서의 7일 내내 반복했던 것 같다.


일행 중 모두가 고산병에 든 건 아니고 확률은 반반이었다. 슬프게도 평소 체력, 나이, 성별 같은 건 하나도 상관없는 그냥 로또에 가까운 확률이었다. 자전거와 다리로 하루 종일 여행할 정도로 체력이 좋던 나는 고산병으로 밤마다 지옥을 경험했는데 운동이라곤 1도 모르는 가녀린 여성 분은 잘 먹고 잘 자고 잘 돌아다니는 것을 보며 심히 좌절했다. 우리는 여러 날 토론한 끝에 고산병의 기준이 DNA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일단 고산병에 걸린 사람들은 예방약도 산소통도 진통제도 무효하다. 그냥 버티는 수밖에. 문제는 젊고 체력이 있으면 그나마 버티는데 나이가 있거나 지병이 있으면 상황은 더 악화된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날 새벽 고산병으로 힘들어하던 일행 몇 분이 하산을 했다. 마침 내가 겨우 잠들은 새벽 나절에. 시가체 공항을 통해 급히 내려갔다는 메시지를 간발의 차로 놓친 나는 잠에서 깬 후 눈물을 흘렸다.

나도 데려가...

나의 소리 없는 절규에도 여행은 계속되고 우리는 에베레스트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날이 내 상태처럼 흐렸다. 여름에는 대체로 날이 흐리다고 한다.

국경지대

에베레스트 산은 네팔과 국경 지대에 있어서 경계가 삼엄하다. 계속 검문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검문 지대에서 사진 찍으면 추방당한다고 해서 거의 찍은 게 없다. 여긴 찍어도 되는 지점.

협곡 단층

과학선생님이 오면 좋아라 할 지형들이 엄청 많다.

길이 엄청 구불구불하다.

자세히 보면 야생 사슴 하나가 뛰어(...) 올라가고 있다. 몇 발짝 걷기도 힘든 고도인데 역시 토박이는 다르구나 싶었다.

에베레스트 산에 사는 세르파족이 사는 마을이라고 한다. 이렇게 높은 고도에 익숙한 사람들은 내려가면 죽을 수도 있다고...

입장권

에베레스트 산으로 가는 길은 일반 차로는 출입이 불가하고 세르파족 마을에서 국영 버스를 타고서만 갈 수 있다. 일단 마을에 내려 짐을 풀었다.

게스트 하우스

세르파인 가족이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인데 아늑하고 깨끗했다. 짐은 풀고 빠르게 버스에 탑승했다. 곧 해가 진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으면 베이스캠프와 에베레스트 산 등성이 나온다.

원래 여기서 묶는 것이 목표였는데 내가 결사반대했다. 해발 5000미터에서의 밤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 고도에서 자라니...

해발 5000미터의 위력은 대단해서 모든 이들이 몇 발짝만 걸어도 금세 입술이 파랗게 질렸다.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면 해발 8000미터까지 간다는데 고산병으로 죽지 않는 게 신기하다.

에베레스트 산은 빙하로 덮인 데다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해는 금방 져서 어스름이 깔렸다.

운치 있는 베이스 캠프

몇몇 분들이 베이스캠프를 아쉬워했지만 나는 사양하고 싶다. 낭만은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막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여기도 해발 4500은 된다.

버스 안녕

대충 씻고 늦은 저녁을 먹었다. 게스트 하우스 내의 식사 공간은 티베트 문화로 잘 꾸며져 있었다.

기사님과 가이드님

가구는 나무이고 그릇들이 모두 구리와 은세공이었는데 매우 화려하다. 가운데 은그릇에는 물이 가득 담겨있었는데 사람이 아닌 신에게 바치는 물이라고 한다.

게스트 하우스 창에서 바라본 풍경
옥상 구름

그렇게 에베레스트 산에서의 하루가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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