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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비드 중

by 수리향

코로나를 앓은 지 보름이 지났다. 다행히 방학을 하고 나서 잠을 좀 잤더니 회복 속도가 빨라졌다. 기침은 찬바람 안 쐬니 극적으로 좋아지고 입가에 피가 날 정도로 심하던 버짐도 점차 좋아지고 있다. 현재 남은 증상은 근육통, 콧물, 탈모, 그리고 미각 상실이다. 그중에서 탈모와 미각 상실은 정말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바닥을 쓸지 않으면 도저히 살 수가 없다. 가을 낙엽처럼 돌아서면 쌓여 있는 머리카락을 볼 때마다 내가 항암 치료라도 받고 있나 하는 착각이 든다. 게다가 먹는 즐거움이 삶의 낙인 나에게 미각 상실은 더 없는 상실을 안겨 주어서 떡볶이를 시켜 먹어도 통각만 느껴지고 꿀차를 만들 때마다 꿀을 물만큼 넣어야 겨우 스치듯 단맛이 느껴진다. 덕분에 쓸데없이 많이 사두었던 꿀을 빛의 속도로 소진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여기 갈 때쯤이면 꿀도 바닥을 드러낼 것 같다.


이곳도 나의 회복 속도와 비슷하게 일상을 찾아가고 있다. 도시마다 코로나 정점 구간과 회복 구간이 다른 만큼 베이징 같은 일선도시들은 이미 정상화되었을 것 같다. 하지만 땅이 넓은 중국의 특성상 지금 코로나가 시작된 도시도 있다. 흑룡강성의 하얼빈은 지금 쯤 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한국의 언론이 앞다투어 상하이에서 텐진, 그리고 하얼빈으로 뉴스 앵글을 돌리는 걸 보면 ‘다들 어지간히 중국이 싫었나 보다’라는 생각도 든다. 중국이 자국의 코로나 통계를 축소하고 은폐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화면 앵글을 굳이 코로나가 시작되는 지역으로만 돌리는 것도 편파적이지 않나? 뭐 그렇게 편파적인 언론이 있어야 제대로 된 시각을 갖은 이들은 이익을 볼 수 있긴 한데 솔직히 좀 속 보인다. 그런 뉴스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중국은 빠르게 일상을 찾아가고 있다. 중국 백신이 물백신이라 다 걸렸다고 하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더 빠르게 전파되고 더 빠르게 회복하는 것 같다. 그런데 솔직히 화이자 3차까지 접종한 나도 순식간에 걸리고 그 고생을 했는데 전 세계 백신이 다 무용지물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든다. 롱비드 증상까지 고스란히 겪고 있는데 도대체 백신 왜 맞은 거냐. 백신 음모론에 갑자기 눈이 간다.


날이 좋은 데 밖에 나가는 건 아직 어렵다. 잠깐 씩 정말 잠깐 씩 분리수거가 밀려서 잠시 나갔다 오는데 그때마다 몸 상태가 급속히 안 좋아진다. 당분간은 정말 몸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증상이 오래가면 폐까지 갈 텐데 그게 가장 걱정이다. 폐까지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손 쓸 수 없이 개고생 시작. 다행히 근처 마트에서 아파트 내 배송을 해주어서 물과 휴지 등 생필품을 제 때 받을 수 있다. 예전에는 물값이 아까워서 생수 아껴 먹고 세일할 때까지 기다렸다 샀는데 죽을 것 같으니 돈이 문제가 아니더라. 그냥 물을 막 배송 시키고 있다. 휴지도 정말 빛의 속도로 떨어져서 깜짝 놀랐는데 두 달에 한팩 겨우 쓰던 휴지가 일주일에 한 팩씩 날아가고 있다. 사람이 아프면 소진되는 것이 생명뿐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구를 지켜주는 것도 내가 건강해야 가능한 것 같다. 어서 건강해져서 제대로 나다니고 싶다. 하지만 이 시국에 놀러 다니는 건 꿈같은 일이겠지. 마지막 방학을 이렇게 보내다니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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