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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틀림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선생님은 전과자

by 수리향

인문계고에서는 힘들게 지내다가 특성화고에서는 잘 지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목의 문제도 있지만, 사람의 문제도 크다. 내가 본 인문계고 선생님들은 대부분 자신이 '틀린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타인의 반박과 다른 행동을 참지 못한다.


인문계고에서도 나 말고도 독특한 수업을 하는 교사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만 유독 미워했던 이유는 IT 융합 수업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본인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타인이 하면 '비교'를 당하고 자신의 수업 방식이 '틀렸다'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에 불안을 느끼고 경계한 것이다. 자신이 점점 기술에 뒤떨어지고 있다는 두려움도 한몫하는 것 같다. 실제 내 수업 때문에 스트레스와 상처를 받았다는 호소 하는 선생님들도 계셨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다. 기술 교과는 그 흐름이 빠를수록 어제 맞았던 것이 오늘 틀릴 수도 있다. 내가 NCS 교과를 맡으면서 가장 다행으로 여겼던 것이 지필 고사를 보지 않고 100프로 수행평가만 보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지필고사를 볼 경우 그 문제와 답이 천년만년 정답이어야 할 텐데 NCS 과목들은 대부분 어제 도큐먼트와 내일 도큐먼트가 다르다. 매일 기능이 업그레이드되고 수정되는 ing이기 때문에 애초에 지필이라는 것을 볼 수도 없고 볼 필요도 없다.


그런 과목의 특성 덕분인지 선생님들은 대부분 자신의 주장을 눈치 보지 않고 표현한다. 인문계고에서는 회의에서든 어디서든 타인의 의사에 반박하는 것에 대해 '상처'를 준다며 터부시 하지만 이곳에서는 서로 의견을 말하느라 난리가 난다. 인문계에 있을 때 전체 교직원회의 때 '민주적'인 회의를 하겠다고 책상을 동그랗게 하고 의견을 물어보았을 때 모든 교사들이 숨도 쉬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 학교에서 그런다면 그날 집에 제 때 못 간다. 처음 보았을 때는 싸우는 줄 알았는데 주고받고 활발히 의사 교환하는 것을 보면서, 책상 배열의 문제가 아닌 마음의 문제였음을 깨달았던 것 같다. 나는 그런 전체 교직원 회의는 처음이었는데 그날 무척 재미있었다.


외부에서 보면 싸우는 것 같지만 그것은 의사를 교환하는 과정이고 기본적으로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에 상처를 받지는 않는다. 어차피 우리는 매일 틀린다. 어제 print "Hi"가 print("Hi")가 될 수도 있고 python에서의 참조와 C#에서의 참조가 다를 수 있다. 매일 에러를 보고 납땜이 잘못되는 게 당연지사인 이곳에 틀림은 어차피 일상이다.


과거로 돌아가 보면 나는 틀리면 안 되었다. 수능 식 5지선다형 문제에서 함정에 빠져서도 안 되고 계산 실수를 해서도 안 된다. 그것을 최단 시간에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풀어야만 한다. 그 방법은 대부분 항상 정해져 있다. 문제를 가지고 틀리는지 맞는지 시험해보는 몇몇 학생들을 생각해보면 그들이 왜 '틀린' 답에 대해 경기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는 간다.


'선생님 상처 주지 말아요.'


얼마 전 교사 커뮤니티에서도 그런 메시지를 받았다. 원격 수업에 사용되는 물품에 대해 잘못 생각하는 것 같아서 틀렸다고 이야기해주었는데 그것 때문에 상처 받는다고 한다. 저러다 천만 원을 무용지물을 사는데 쓸 것 같아 알려준 건데 '상처'받는다고 말하지 말라고 한다면... 나도 알려주고 싶지는 않다.


누구나 틀릴 수 있다. 틀림이 중요한 게 아니라 틀림을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중요하다. 우리가 틀림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더 좋은 답을 찾을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 교사들이 틀림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러면 우리 교육도 학교도 조금은 더 성숙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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