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전과자
틀림의 끝판왕이라면 아마 3D 프린터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3D 모델링을 아무리 완벽하게 해도 3D 프린터에 올리면 내가 원하는 출력물이 나온 적이 거의 없다. 애초에 옳은 출력물이 있기나 한 걸까? 규격 아무리 계산해도 예쁘게 디자인해도 5번 틀리면 그제야 1번 괜찮은 출력물이 나온다. 이렇게 내적 갈등을 일으키는 3D 프린팅인데 요즘은 방해하는 외부 세력들까지 속속 생겨나고 있다.
어떤 선생님은 '플라스틱 쓰레기 때문에 환경오염시킨다'라고 하고
또 어떤 선생님은 '3D 프린터 많이 하면 암 걸려서 죽는다'라고 하고
또 어떤 선생님은 '쓸데없는 걸 왜 이렇게 열심히 뽑아'라고 한다.
말은 그렇게 해도 납땜도 가르쳐 주고 필라멘트도 잘 사준다. 3D 프린팅은 아두이노와 같은 피지컬 컴퓨팅과 결합하면 대단히 좋은 발명 아이템이다. 하지만 그 가격과 유지보수 때문에 개인이 취미로 삼기는 힘들다. 나도 인문계에 있을 때는 제대로 된 프린터를 구하지 못해 경험하기 힘들었지만 이 학교 와서는 좋은 프린터와 풍족한 재료비 덕분에 제대로 된 3D 프린팅을 공부할 수 있었다.
3D 프린팅의 매력은 내가 '상상하는 것'을 '실물'로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답이 정해진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답도 뭐도 아닌 상상 속에 산물을 만들어 내 손에 쥐어 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실패와 고통을 수반하지만, 많이 뽑다 보면 '인내'라는 미덕이 생겨난다. 요즘은 될 때까지 수정하고 뽑기보다는 뽑은 다음 사포와 드릴로 깎아서 작품을 완성한다. 그래서 3D 준비실은 이름 모를 후가공 연장들로 가득하게 되었다.
사실 3D 프린터는 우리 IT소프트웨어과 말고 IT 응용과 주요 과목이다. 그곳에는 30대 정도의 3D 프린터가 있고 전문가이신 선생님이 상주하며 매일 연구하고(라고 쓰고 논다고 읽는다) 계신다. 아침에 일찍 와서 일 끝내고 실습실에 파묻혀 사는 선생님의 모습은 미래에 내가 그리는 모습니다. 나이가 좀 들고 이제 막 일 안 시킬 때쯤에 정말 꿀꿀 업무를 맡아서 일은 대충 하고 취미 생활(겸 교육)을 한다! 아 정말 멋진 미래가 아닐 수 없다.
나도 덕분에 응용과에 가서 참 많이 배우고 많이 가져오기도 하고 출장 서비스도 부르고 그랬다. 마음씨 좋은 선생님은 항상 기꺼이 와주셨고 좋은 물건 있으면 서로서로 나누는 아름다운 미풍양속도 가지게 되었다.(물론 받는 쪽은 대부분 나이지만) 이제 나도 어느 정도 3D 프린팅을 할 줄 알게 되고 사용하는 소프트웨어가 달라지면서 자주는 안 올라 가지만 그래도 문제가 생기면 항상 올라가서 물어보고 조언을 구하고 한다.
내가 나이가 들면 저렇게 순수함과 열정을 간직한 채 연구할 수 있을까? 나이를 거꾸로 먹어 가는 선생님들을 볼 때마다 나는 다짐하곤 한다. 나는 꼭 저런 교사가 되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