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전과자
원격 수업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나는 (자랑 같지만 자랑할만하다) 사이버대와 인연이 깊은 것 같다. 드디어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대학원생이 되었는데 방송대에 이어 두 번째 사이버대이다. 면접 보러 간 이후 한 번도 교정을 밟은 적이 없으니, 이런 상황을 만든 코로나 19의 멱살을 잡을 수 있다면 열 번은 더 흔들었을 것 같다.
2020년 2월 방송대 졸업을 앞둔 나는 2019년 11월쯤 대학원 면접을 보고 있었다. 당시 교육청에서 교육대학원에 인공지능 학과를 만든다는 선전을 했지만, 교육대학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교원대를 통해 깨달은 나는 단호히 공학대학원 컴퓨터 공학과로만 원서를 썼다. 내가 썼던 곳은 연세대와 인하대 컴퓨터 공학과였다. 당시 인하대가 교사 장학금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대학원은 좋은데 나와서 컴퓨터 전공으로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연세대를 선택했다. 다행히 인공지능이라는 대세에 맞춰 참 좋은 과목들이 개설되었고 덕분에 다른 과의 학생들의 수강신청 좌표가 되면서 수강신청에 애를 좀 먹었다.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신입생 환영회도 못하고 학우들도 만나지 못한 채 사이버로 강의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초중고 원격 수업보다 2주 정도 일찍 시작한 연세 사이버 대학원은 Zoom을 이용하여 나름 빠르게 원격 수업을 정착시켜 나갔다. 컴퓨터 공학과 교수님들은 그중에서 엄청난 강의 퀄리티를 보여주어 '나도 저렇게 수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1학기 때 들은 과목은 응용기계학습(머신러닝), 시각 인공지능, 건설 데이터 사이언스였다. 기계학습과 인공지능은 우리가 요즘 말하는 AI 프로그래밍이 맞다. 전자는 우리 과 교수님으로 Tensorflow를 이용한 딥러닝 '기술'을 가르쳐 주셨고, 후자는 타과의 외국인 교수님으로 딥러닝의 '이론'을 가르쳐 주셨다. 두 수업 모두 딥러닝이 무엇인지 깨닫는데 큰 도움이 되었지만 후자는 강의 퀄리티가 너무 떨어져서 돈이 아까웠다. 이제 딥러닝이 대충 뭔지 감은 잡은 것 같은데, 결론만 말하면 딥러닝은 엄청난 막노동이다.
내가 교수님께 '컨벌루션이 어떤 알고리즘이냐'라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교수님은 '딥러닝 계산법일 뿐 알고리즘이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그러니깐 최적해를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알고리즘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그것을 찾는 것을 연구한다면 딥러닝은 정말 무식하게 다 해봐서 그걸 계산한다. 코드 칠 때는 몰랐는데 손으로 계산해보니 그 무식함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전공 바꾸어서 대학원 오면 힘들지 않아요?
이런 질문도 많이 들었다. 근데 이미 방송대 나와서 전공자의 자격도 갖추었고 평소에 공부한 게 있어서 따라가기 어렵지 않았다. 딥러닝에서 많이 사용되는 Python 언어도 오래전에 익혀서 웹크롤링 겸 Epub 전자책을 만드는 프로그램까지 만들어 봤다. 개발 언어로서 쉬운 언어로 선두를 달리는 Python을 공부했다는 게 부끄러울 정도다. 당시 딥러닝 관련 공부도 했지만 코드는 칠 수 있어도 이론적인 부분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 대학원에 온 것이다. 와보니 딥러닝 이론을 알려면 'Deep Learning'이라는 키워드가 아니라 '심층 학습'이라는 키워드로 책을 찾아야 하더라. 여하튼 주변의 걱정이 무색하게 수업에 잘 적응했고 공부도 잘 해서 학점도 잘 나왔다. (하지만 장학금은 주지 않더라.. 흑)
인공지능뿐 아니라 나의 관심사는 다양하다. 깊이 있게 '학문'을 공부하지 못한다고 엄마는 투덜거리지만.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 마법을 그렇게 깊이 있게 파고들 이유가 있나? '아씨오'도 배우고 '익스펙토 팩트로늄'도 배우고 해야지. 반찬도 하나만 먹으면 지겨운데 공부도 매일 같은 것만 하면 지겹지도 않나.
현대의 IT 분야는 정말 다양한 곳에서 융합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나 같은 문어발 공부자가 깊게 공부하는 뿌리형 공부 자보다 좀 더 유리할지도 모른다. 내가 교수를 할 것도 아니고 어느 한 분야에 뼈를 묻기에는 IT 세상에는 신기한 마법도 많고 새로운 주문도 많다. 그리고 그것들이 어느 순간 연결되고 서로 필요하다. 하나의 개발 언어와 기술로 완성되는 플랫폼은 이제 없더라. 그래서 협업이 중요해진 것이겠지만, 내가 모르면 협업도 어렵다. 물론 언젠가는 나에게 맞는 컴퓨터 분야를 찾아 골방에 틀어 박혀 공부도 하고 논문도 쓰고 그래 보고도 싶다.
내가 좋아한다면 그것을 즐겨라. 다른 이가 뭐라 하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그것이 길이 아닐까 싶다. 물론 사이버 대학원은 추천하지 않으니 대학원에 오고 싶은 분들은 코로나가 지나간 후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