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정보컴퓨터 교사 양성과정이 끝나고 나는 새로운 학교에 출근을 했다. 이미 2월에 만나보았지만 딱 한번 보아서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예전부터 정보 컴퓨터 연수를 자주 다녀서 낯이 익은 분들도 몇 분 계셨다. 대부분 연수 강사로 오셔서 이것저것 친절하게 가르쳐 주시던 분들이다. 인문계 학교에서는 신청하면 죄가 되는 연수 내용이 여기서는 일상이다. 이제 나는 일상에서 정보 컴퓨터를 공부하고 가르쳐야 한다.
오자 마자 나는 2학년 아이들 담임으로 배정되었다. 그리고 옛날부터 가고 싶었던 정보부의 부원이 되었다. 물론 인문계 고등학교와는 달리 대부분의 컴퓨터는 실습실을 담당하는 각 과와 전문부 소속이기 때문에 여기서의 일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일이 이렇게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래 일이 많지도 않았고 부장님도 부지런하고 스마트하셔서 부원에게 일을 시키기 전에 알아서 처리하는 편이었다. 한 학기 동안 했던 건 그냥 답안지 읽기 밖에 없었다. 그것도 당시 심한 감기에 걸려서 약 먹고 졸다가 잘못 리딩 한 것 빼고는 별 일도 없는 무척 쉬운 일이었다.
아이들도 좀 조급증이 있는 것 같지만 대체로 착하고 컴퓨터만 쥐어 주면 조용해지는 천상 전산과의 아이들이었다. 남자아이들 반을 맡는 건 처음이라 힘든 점도 있었고 갈등도 있었지만 대체로 크게 벌어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크게 나도 이 학교 학생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비하면 정말 조족지혈에다 이전 학교의 태움에 비하면 애교도 안 되는 수준이라 어려운 점은 없었다.
가장 어려운 것은 내가 맡은 과목이었다. 특성화고에서는 NCS(국가 직무능력표준) 과정이 있는데 내가 맡은 웹 프로그래밍과 데이터베이스가 바로 그 영역이었다. 하필 내가 맡은 과목이 내가 방송대 시절에 가장 힘들어하고 재미없어했던 과목이었다. 하지만 처음 맡는 과목인 만큼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이전에 가르치던 선생님의 수업 방식과 다르다고 아이들이 많이 투덜대었던 것 같다. 데이터베이스의 경우는 php와 접목하여 가르쳤는데 초반에 프로그래밍 세팅 때문에 문제가 많았다. 컴퓨터 수업은 정말 프로그램 버전과 세팅 상태에 따라 몇 시간 동안 수업을 할 수 없게도 될 수 있다. php도 당시 7.0이 나와서(대부분 책이나 홈페이지는 php5) 달라진 코드가 많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에러가 났을 때 처음에는 무척 당황했다.
이런 게 일상인 이곳에서는 선생님들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것일까? 실제로 대부분의 전공 교과 선생님들이 거의 매일 공부하고 연구했고 매년 학기 초에 바뀌는 프로그램 버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 덕분에 서로 모이면 서로의 수업과 과목에 대한 이야기를 활발하게 나누고 소통한다. 이전 인문계고에서는 수업 조차 참관하기 힘들었는데 여기서는 문 열어 놓고 실습실에서 다 같이 뭐 하는지도 볼 수도 있고 EBS 온라인 클래스 신청해서 수업을 듣기도 한다. 지금 다른 사람이 맡은 과목이 언제 나에게 올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선생님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교사들이 수업하는 과목에 대해 궁금해하고 공부하고 그러는 것 같다. 교육과정도 매해 바뀌어서 NCS 과정은 점점 많아지고 실무 중심으로 학과가 자꾸 개편되다 보니 선생님들도 덩달아 흐름에 맞추어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웹 프로그래밍과 데이터베이스를 열심히 한 학기 동안 가르치다 보니 내가 공부가 되어서 겨울 방학 때에는 코로나앱(https://coronako.herokuapp.com/)도 만들고 아이들을 위해 인정산AI(https://injungai.herokuapp.com/) 사이트도 만들 수 있었다. 이미 학교 수업을 위해 홈페이지(http://injungsan.site)를 만들어 쓰고 있지만 이것은 php로 만든 그누보드 템플릿으로 이미 다 만들어져서 그냥 올리면 끝나는 쉬운 거고, 위의 두 개는 Nodejs로 하나하나 코드로 작성한 것이다. 저번 학기 때 웹 프로그래밍과 데이터베이스를 공부하면서 나도 실력을 많이 늘었던 것 같다.
올해는 게임 프로그래밍을 가르친다. Unity인데 1학기 때는 3D와 2D 게임을 만들어 보았고 2학기에는 VR/AR 게임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다. 문제는 VR이 워낙 용량도 메모리도 많이 먹는 게임이라 개발도 쉽지가 않다. 컴퓨터 용량이 적어서 한 번에 많은 양을 수업하기가 힘든 것 같다. 무엇보다 2학기라 아이들이 원서 작성 때문에 자꾸만 빠져나간다. 내 수업은 매일 실습한 것을 깃허브에 올리고 다시 다음 시간에 내려받고 하면서 이어 가는 한두 달짜리 수업이다. 근데 중간에 뭉텅 빠지는 날이 있으면 다시 하나하나 공을 들여 지도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2학기는 가르치는 나도 아이들도 업그레이드된 상태이기 때문에 진지하게 하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을 텐데, 특성화고 학생들도 입시를 치르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다.
그러나 저러나 2학기가 끝나면 나는 Unity를 어느 정도 마스터할 것 같다. 그럼 겨울 방학 때는 또 무엇을 만들까? 그런 생각을 하면 지금도 설렌다. 정보 컴퓨터 교사로 전과, 성공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