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쩍 내비치기
꽃을 그릴 때는 보태니컬 아트라 하여 맥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묘사한다. 색도 쨍하고 선명한 원색 계열을 사용하는데, 반대로 풍경은 멀어질수록 대기의 산란으로 색이 흐려지고 차가워진다. 일종의 자연물색은 원색과는 거리가 멀어 혼색이 필수인데 그 과정에서 색이 탁해진다. 게다가 내가 느끼는 풍경의 색을 그대로 쓰면 결과물이 일러스트와 풍경 어느 중간쯤이 된다.
얼마 전 갔던 돌새꽃돌 과학관을 그려보았는데 안개 낀 뿌연 날씨는 도저히 담아낼 수가 없다. (근데 다시 보니 하늘 색깔부터 글렀다.)
풍경을 잘 그리시는 분들은 풍경을 묘사하지 말고 흐린 눈으로 바라보았을 때의 느낌과 같이 슬쩍 형태만 내비치라고 한다. 근데… 그게 정말 쉽지 않다.
얼마 전 갔던 오두산 통일전망대의 모습. 처음 그렸을 때 저 흰 건물의 벽돌을 하나하나 묘사했는데 너무 어색해서 망하고 이번에는 대충 형태만 그리고 숲도 형태만 그렸다. 희고 창백한 느낌은 살렸는데 몇 프로 부족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