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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의 무제

by 수리향

수학 교사로서 6년, 재작년 이맘때 교원대에서 파견 연수를 마무리하고 정컴 교사로 2년째. 내년이면 나도 10년의 교직 경력을 가지게 된다니 생각이 조금 많아진다. 직업 특성상 신기하게 전보 내신 주기와 같은 5년 주기로 직업적 방황이 시작된다. 과거에는 1정 연수받고 정컴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번에는…. 과거와 다른 건 컴퓨터 교사로서의 생활은 무척 만족스럽다는 것이다.


특성화고라는 특성상 교과서가 아닌 실무적인 NCS 과목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도 좋고, 그 과정에서 나도 공부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좋다. 아이들도 내가 가르치는 과목을 좋아해서(내 생각에는 그런 것 같지만?) 난이도를 계속 높임에도 상당히 열심히 잘 따라온다. 수업과 평가에 대해서는 빡빡한 편이라 쉬는 시간도 주지 않고 내용도 쉽지 않은데, 어떻게든 완성하려는 모습이나 쉬는 시간에도 내 눈치를 보며 화장실 가도 되냐고 물어보는 학생들을 보면, 웃음도 나오고 기특하기도 하다. 뭐 수업 시간만 되면 예민 예민 해지는 내 성격 때문에 그런 것도 같다.(웃음)


이번 학기는 시간표 변동이 많아서 진도가 들쑥날쑥해서 학기 말에 진도를 꾸역꾸역 나가진 않고 일찍 끝난 반은 2주 정도 ‘게임 연구’ 시간을 가져보았다. 그동안 제작이 한 달 밖에 안 걸리는 가벼운(?) 게임만 만들다가 시판 게임들을 찾아보면서 서로 품평을 했는데, 평소에 게임을 하지 않던 내가 더 많은 것을 배운 고마운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게임들을 많이 알고 있었고 우리가 사용하는 Unity 엔진을 이용한 게임들 중 최신 게임과 기술을 많이 알려주었다. 그중에서 ‘원신’이나 ‘제2의 나라’를 보면서 카툰 랜더링 같은 고오급 기술을 보면서 참 많이 감탄했더랬다. 게임이라는 것이 프로그래밍뿐 아니라 그래픽, 사운드, 스토리를 아우르는 종합 예술인데 코드만 짜던 나도 좀 더 눈을 넓혀야겠다는 생각.


그래서 랜더링과 쉐이더를 방학 전에 또 열심히 보았는데, 이게 그래픽을 엄청 잡아먹어서 집에 있는 컴퓨터로는 어림도 없더라. 더 좋은 컴퓨터를 사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개학하고 학교에서나 공부해야 하는 건지. 이 학교에 오고 연구비로 고민한 적이 없었는데 오래간만에 그래픽 카드를 뒤져보며 고민을 했었다. 뭐 방학 전에 이미 어느 정도 보아서 개학하고 마저 보면 컴퓨터를 살 정도는 아닌 것 같아서 일단 덮어두었다. 내가 그래픽 기술자가 된다는 건 아니고 그냥 게임 만들 때 좀 더 퀄리티만 높이는 걸 가르치고 싶은 거니깐. (그렇게 이번에도 고만고만한 구간에 멈춤….)


학생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그리고 더 궁금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자극을 받고 그러는 것 같다. 하지만 역시 고만고만한 구간에서 멈춰버리는 것이 항상 아쉽다. 주변에 나보다 잘하는 분들이 있어 더 자극받고 더 배우고 공부하고 싶은 그런 약간의 아쉬움. 대학원을 다니면서 배움이라는 아쉬움을 채워나가고는 있지만 특수대학원이라는 곳이 내가 정말 공부하고 싶은 과목보다는 그냥 개설된 과목 중에서 나의 욕구와 절충하는 수밖에 없기에. 역시 공부는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인가? 가끔 잘하시는 분들을 보면 어떻게 했는지 물어보고 싶기도 한데, 코로나19로 아직 얼굴도 모르는 형편이라 감히 그런 용기가 나지 않는다.


대학원도 이제 한 학기 남았다. 나름 치열하게 공부해서 방학 중에는 더는 컴퓨터에 손대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방학만 되면 방에 틀어 박혀 미뤄두었던 컴퓨터 책을 1-2권씩 독파하던 그 열의는 어디 가고 이런 게으름뱅이가 되었나 싶다. 좀 더 쉬면 또 열의가 샘솟을 것 같은데 그때쯤이면 끝나는 것이 방학인지라,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에 감사하며 내일부터라도 계획표를 써야 할 것 같다. 이번에 공부해서 안 되면 조기 졸업하지 말고 그냥 논문을 써야 하나 그런 생각도 든다. 밤을 새우다 보면 새벽녘 항상 생각이 많아진다. 지금이 그런 시기가 아닐까 싶다. 나는 어떤 삶을 원하는지, 나는 왜 사는지, 그 답을 얻다가도 얻고 나면 다시 돌아오는 질문의 답을 찾는 시기. 뭐 인생은 그런 쳇바퀴의 연속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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