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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화 Jun 20. 2022

내 어머니의 고운 시절

삼베로 덮힌 추억

캔버스에 꽃을 그린 뒤 삼베로 덮어주듯 색을 올렸다.

일부러 살짝살짝 꽃이 드러나도록ᆢ삼베천같은 결이 살도록 켜켜이 색을 칠해가며ᆢ

그리고싶은대로 다 그려낼수있는 실력은 없지만

적어도 내 마음엔 드는ᆢ 이 그림의 제목은

'내 어머니의 고운 시절'이다.

삼베로 덮힌듯 잊혀져가는, 아름답고 희미한 추억속의 엄마모습, 엄마의 젊은 시절이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가장 고운 모습은

그옛날 분홍모시 한복을 입었던 엄마이다.

그 한복감은 어느 어버이날,

대학생이었던 큰오빠를 필두로

기껏 고등학생이거나 중학생이었던 우리 형제가

돈을 모아서 엄마에게 사드린 것이었다.

사실 난 그때 겨우 국민학생이었으니

천값은 한푼도 못보탰을테지만

그시절, 명동만큼 핫했던 삼풍상가 포목집에서  

속이 비치는 연분홍 아사천에

드문드문 작은 링모양의 분홍빌로드(벨벳)가 붙은

그 스위스제 원단을 끊을때의 흥분과 만족감은 생생히 기억한다.

그리고 그걸로 한복을 해입으신 엄마가

언젠가 저만치 내 학교교정에 들어서시는 모습을 발견할때면 너무도 반갑고 기쁘고 행복했던 것도ᆢ


유치원때까지도

유치원에서 돌아오자마자 가방을 내던지고

엄마무릎에 기어올라 엄마 젓가슴을 주물러대

엄마로 하여금 젖에 빨간약을 바르게하고

너땜에 피가 난다고 뻥을 치게 만들고ᆢ

고등학생때도

잠만 안 오면 베개를 들고 엄마방으로 쫓아갔던ᆢ그야말로 평생 엄마바라기였던 내가 엄마를 병원에 홀로 뉘어놓은지 13일,

드디어 오늘은 엄마를 뵈러간다.


뉴스에선 오늘부터 면회가 자유로워질거라지만

예약대로라면 15분간 유리를 사이에 둔 엄마와의 첫번째 비접촉면회를 앞두고 또 잠이 안 온다.


생각해보면 노인의 자존감은

혼자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거나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그런 병에 들었다고

스스로 잃는게 아니라

좀더 젊고 건강한 우리가

그러지못한 그들에게서 빼앗는 것일수도 있다.


혼자 움직이지 못하거나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가

자존감을 잃거나 빼앗기는 경우는 없으니

우리 엄마에게서 자존감이 없어진다면

그건 엄마탓이 아니라

딱 그렇게 생각하는 그 순간의 나의 탓,

최고였던 엄마모습을 잊고

순전히 병든 엄마만을 발견해내고 얕보는

나의 탓인거다.


거의 2주만에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겨우 15분ᆢ

엄마를 뵙고올 생각을 하면

뵙기도 전에 어떻게 헤어져올지 벌써 두렵다.

어쩜 엄마는 그새 우리를 잊어

그 아쉬운 만남을 덜 힘들어하시려나, 하는게

차라리 바람이지만

기억은 못해도 그때 그때의 감정은 느끼실테니

엄마가 잠시잠깐 아주 행복하시다

또 금세 우릴 잊고, 쿨하고 덤덤하게 들어가시길 바란다.


내가 기억하면 되지,

이런 순간에도 엄마가 나를 기억하고

이별을 인지하고 ᆢ 그렇게 다 알고 정신을 다 챙기길 바라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니 ᆢ


그래도 난 정말 예쁘게 차려입고

엄마를 보러 갈 생각이다.

그옛날 분홍모시한복을 입고 내게 온 고운 엄마처럼

나도 한껏 예쁜 딸의 모습을 보여주고싶다.


그래서 엄마가 나를보며 한번만 웃어주어도

엄만 늘 그러셨듯

세상에서 가장 곱고 자랑스러운

나의 최고엄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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