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눈은 여섯 시에 떠졌지만 다시 뒹굴대며 침대에서 눈을 감았다. 7시에 일어나도 충분하겠지.
2. 이제 일어나라고 깨우러 온 배우_자 님 덕분에 7시에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한다.
3. 오늘 아침은 고구마랑 오렌지다. 냄비에 물을 조금 넣고 고구마 네 개를 삶는다. 딸칵딸칵 소리를 들으며 아이에게 책가방을 싸라고 일러둔다.
4. 삶아진 고구마 껍질을 벗기고 반으로 가른다. 예열하고 있던 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삶아진 고구마를 굽는다. 며칠 전에 이렇게 해줬더니 맛있었다고 아이가 어제저녁 주문해 놓은 아침 메뉴다.
5. 고구마를 먹다가 목이 맥힐 것 같아 차를 준비한다. 나는 레이디 그레이. 배우_자님은 얼 그레이. 두 개의 차가 이름이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재미있다. 나는 신여성 같고 얼 그레이는 얼빠진 느낌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큭큭 웃는다.
6. 월요일은 당분간 일찍 나가야 되는 날인데 나는 차를 마시며 여유를 부린다.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나니 나에게 시간이 생겼다.
7. 얼마 전에 구매해서 며칠 동안 열심히 입고 있는 블랙 리넨 쟈켓을 입었다. 처음 입고 나간 날 만난 이들이 다들 나에게 직접 만든 거냐고 물었다. 배우_자님은 작가 옷을 샀네라고 말했다. 두 개의 뉘앙스는 같다. 칭찬 같지 않은 칭찬이다. 이 칭찬의 끝말은 옷이 예쁜데 자기들은 못 입는다로 끝난다.
8. 8시 35분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시간이다. 마을버스를 타야 하기에 아파트 정문으로 걸어간다. 정문으로 나가서 가는 길엔 개똥이 전혀 없다.
9. 버스가 오나 안 오나 신경 쓰느라 아이의 스몰 톡이 귀에 잘 안 들어온다. 그래도 듣고 있다는 호응을 열심히 해주며 우리는 버스 정류장 앞에서 헤어진다. 큰 도로에서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학교로 향하는 길이 바로 왼쪽 골목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 길은 헤어짐이 길지 않다.
잘 가 이따 만나!
10. 저쪽에서 초록색 버스가 보인다.
11. 버스에서 읽으려고 빨간색 얇은 책을 챙겨 왔지만 결국 오늘도 꺼내지 못한다. 자리가 없어 바퀴 자리에 앉았기 때문이다. 난 불편한 자리에서는 멍 때리는 게 좋다.
12. 용산행 급행이 온다. 급행은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가방을 끌어안고 종종걸음으로 타서 주변을 둘러본다.
13. 어떤 사람은 인스타에 불멍을 올리는 중이다.
어떤 사람은 주식을 보고 있다. 어떤 사람은 게임을 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백신 관련 뉴스를 본다.
14. 모두가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15. 나도 가방 안에서 책이 아닌 폰을 꺼내서 네이버를 누른다.
16. 집에 올 때는 책을 꺼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