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리

비온 뒤 새소리는 우렁차다.

by 수링


1. 한 달에 한번 금요일은 뜨개 모임이 있는 날이다. 목요일만큼 아침이 바쁘지는 않지만 적어도 머리는 감아야 마음이 편안한 날이다.


2. 안 꾸며서 누추해 보이지 않으면서 꾸몄지만 과하지 않게 정돈된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는 옷을 고르기 위해 머릿속으로 한참을 코디를 해본다. 옆에 와서 일상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아이의 말이 귓구멍으로 들어오질 않는다.


3. 아이와 함께 후다닥 현관을 나서니 오늘은 엄마가 학교 앞까지 데려다주는 날! 이라며 콧노래를 부른다. 그래 맞아. 월요일 금요일은 학교 문 앞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었지. 근데 다른 날도 거의 문 앞까지 데려다주고 있으니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정글짐까지만 데려다주어야겠다고 다짐하며 이젠 그렇겐 안 한다고 말해준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는 조금 앞까지만 같이 가자고 선언한다.


4. 새소리를 들으며 늘 걷던 길로 아이와 함께 걷는다.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많이 늦은 걸까? 조금 빠른 걸음으로 아이를 재촉한다. 오늘은 비가 온 다음날이라 그런지 유독 새소리가 많이 들린다.


5. " 엄마 새들이 날 불러. "

" 그래? 뭐래? 학교에서 기다린데? "

" 응. 흐흐 "

" 저 새는 내 친구 OO이야. 학교에서 날 기다려."


6. 오늘은 개똥이 없다. 분명히 그 사람은 이틀에 한번씩 새벽 산책을 하는 게 틀림없다.


7. 정글짐까지 걸어가니 아이들이 많이 보인다. 엄마와 함께 가는 아이 친구도 보인다. 마침 그 친구도 엄마와 헤어진다. 이때다 싶어 아이에게 인사를 한다. 친구랑 같이 들어가. 이따가 만나!


8. 뛰어가는 아이 등에서 주황색 가방이 텅텅 흔들린다. 서로 마주 보는 아이들이 예쁘다.


9. 모임에 가기 전에 도서관에 들러서 책도 반납하고 빌리고 싶었던 책도 빌려야 한다. 마음이 급하다.


10. 오르막길을 따라 헉헉대며 도서관에 도착하니 아침부터 커다란 박스를 설치하고 있다. 박스 위에는 노란색 큰 글자로 스마트 도서관이라고 써져있다. 도서관 앞에 스마트 도서관을 굳이 설치해야 하나 의문이 들었지만 24시간 언제든 대출 반납이 가능하다고 쓰인 것을 보니 반갑다. 매주 수요일인 도서관 휴일을 잊고 방문했다가 허탕 친 기억이 떠올랐다.


11. 우리 도서관에도 관장이 있는 걸까. 굉장히 높은 사람 같은 여성분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하얀색 곱실거리는 단발머리에 트위드 질감의 원피스를 입으셨고 허리 벨트도 하셨다. 아니면 투피스였나. 어쨌든 허리가 잘록 들어가고 치마 끝으로 갈수록 퍼지는 샤넬라인 스커트다. 참 곱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12. 어제 빌리고 싶었던 내 책들과 아이 책을 빠르게 찾아낸 뒤 대출을 한다. 작년엔 도서관보다 책 구매를 더 많이 했었는데, 이젠 마음껏 빌릴 수 있으니까 좋다. 공간이나 공기는 그대로 일 텐데 내 마음이 그랬다. 아마도 그 핑계로 책을 구매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책 사는 건 과소비라고 느껴지질 않으니 말이다.


13. 부지런히 걸어서 뜨개 모임 장소에 도착했다. 모임자 중 한 명이 어제 생일이어서 장소 대여해주시는 분이 케이크를 준비해 놓았다고 한다.


14. 방금 구워진 치즈케이크 냄새와 커피 향을 맡으며 자리에 앉으니 이제야 내 자리에 앉은 것 같다.


15. 오늘은 양말 목까지만 뜨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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