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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본 적 없는 치과

by 수링



너네 아빠 뭐 하셔?

치과

아빠 의사였어? 왜 말을 안 했어?


모르겠다. 내 입에서는 우리 아빠 의사라는 말이 잘 안 나와서 누군가가 물어보면 늘 작은 목소리로 치과 하신다는 말을 했던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치과를 운영한다는 거냐 의사라는 거냐며 되물어본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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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치과가 문을 닫은 저녁에 가서 치료를 받은 적도 있었다. 아빠는 우리가 낮에 오면 간호사언니한테 미안해서라고 했다. 시간이 점점 지나고 나도 나이가 들면서 치과 가는 횟수는 줄어들었다.


어쨌든 난 이때까지 아빠치과 말고 다른 치과에서 치료를 받은 적은 없었다. 그래서 좀 두렵다.


작년 여름쯤이던가? 금으로 된 젤리곰 모양으로 치료해 놓은 어금니의 금이 빠진 것을 집에서 발견했다. 일단 동네치과로 바로 가서 살짝만 메꾸려고 진료를 받았다.


동네치과 선생님은 그림까지 그려가며 확실한 건 갈아내야 알 수 있지만 이미 속이 많이 썩었고 이 정도면 뿌리까지 썩었을 가능성이 있어서 기둥을 박아서 크라운을 씌워야 한다고 하신다. 아니면 아예 임플란트를 해야 할 수도 있다. 가격은 50-80만 원 사이.

빨리 치료해야 하니 지금 시간이 되면 마취를 한 뒤 신경치료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가격과 설명을 듣고 놀라서 생각을 해본다고 한 뒤 일단 음식물 안 들어가게 메꿔만 달라고 하고 치과를 나왔다.


당장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얘기를 했더니 웃는다. 겁주네 그 치과가. 치료해야겠다. 이번 주 중에 와.


아빠는 신경치료까지는 안 해도 될 것 같다며 이를 갈아내고 크라운을 씌워주셨다. 아빠는 늘 그렇다. 살살 고쳐 쓰면 된다고. 잇몸이 아프면 인사돌을 먹거나 잇몸치약을 쓰라고. 잇몸이 부으면 집에 상비되어 있던 소염진통제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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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치과는 2024년 11월 27일까지였다. 내가 어렸을 때 개업하셨으니 적어도 40년은 훌쩍 넘게 한자리에서 치과를 하신 거다. 다른 치과에 취직을 하신다고는 하셨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부재중이다.


근데 그저께부터 이가 아프다. 크라운을 씌은 그 이가 아프다. 아 고민이다 어째야 하나. 아빠에게 슬쩍 말했더니 잇몸이 부은 거 같다고 잇몸치약을 쓰라고 한다. 그런가? 감기기운이 있어서 그런 걸까?


그런데 어젯밤에는 이가 욱신욱신 정말 아팠다. 눈을 감고 온갖 상상을 했다. 아빠 말고는 치료를 받아본 적이 없는데 누구에게 받지? 잘해줄까? 내 이들이 다 이상하다고 하면 어쩌지? 크라운 잘못되었다고 다시 빼면 엄청 아프지 않을까? 이제부터 치과를 정해야할 텐데 어디로 가지? 일단 애가 다니는 곳에 가볼까? 토요일에 할까? 저번엔 휴무던데.


온갖 생각으로 밤을 보내고 아이가 다니는 치과를 갔더니 휴무다. 큰길로 나가서 예전에 무료 스케일링을 (아빠는 잇몸에 안 좋다며 스케일링도 자주 안 받는 게 좋다는 주의) 받았던 치과로 향했다


엄청 큰 치과다. 선생님도 3명이고 교정도 한다. 간호사선생님들도 여럿이고 카운터 보는 사람도 있고 상담실장도 있다. 좋아 보인다.


여차저차 설명을 하니 엑스레이 사진도 찍고 전기검사도 하고 찬물검사도 했다. (하지만 아픈 반응은 없었다.) 뿌리 끝 쪽이 확실하진 않지만 염증이 있는 것 같다고 하며 나에게 나이 많으신 분한테 크라운 받은 거냐고 물으시며 어쩌다 치료를 받게 된 거냐고 묻길래 몇 달 전에 아빠한테 받은 거고 신경치료까진 안 해도 된다고 해서 크라운을 받았고 이제는 치료를 안 하셔서 여기 온 거라고 했다.


아! 가족한텐 원래 그렇게 치료해요. 제가 왜 물어봤냐면 나이 드신 분들이 신경치료를 안 하고 크라운을 씌우거든요. 근데 이제 40~50살이니까 아빠한테 물어보면 신경치료 하라고 하실걸요? 더 궁금하신 게 있으신지? 가격은 실장님한테 물어보면 되고 오늘 하실 거면 치료는 40분 정도 걸립니다.


무슨 의미인지 알쏭달쏭 하지만 알 것도 같다. 보통 마취주사를 놓고 20분 이상 대기실에 앉아있다가 치료하던데 나는 그냥 누워있는 상태에서 10분쯤 지났을 때 아빠는 치료를 시작한다. 하다 보면 마취가 된다나.. 중간에 아파 아파 그러면 주사를 또 놓는다.

그리고 치료 내내 아무 설명도 없다. 뭘 한지도 모름.

아니면 아프면 가족이라 바로 또 치료해 줄 수 있으니 굳이 신경치료를 안하는걸까? 그래서 나는 이제까지 신경치료를 받아본 건지 안 받아본 건지도 몰랐다. 여기서 엑스레이로 이 전체를 찍어보더니 신경치료 안 받아보셨다며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다. 해놓은 크라운은 없애고 가운데를 구멍을 낸 뒤 신경을 제거하고 고무관을 넣은 뒤 레진으로 메꾸고 새 크라운을 씌운다고 하신다. 가격은 45-50만 원.


전화 좀 해보고 결정해 본다 하고 전화를 걸었다.


아빠는 크라운을 뚫어서 신경치료를 해달라고 해보라고 한다. 그렇게 임시로 몇 달 있다가 새 걸로 바꾸면 된다고. 엑스레이 사진을 아빠가 볼 수 없냐고 한다. 나는 영 눈치가 보여서 그게 좀 그렇다고 했더니 당당하게 물어보라며 왜 그러냐고 한다. 그리고 일반 진통제말고 소염제사서 먹으면 나을 거라고 한다. 신경치료한다고 해서 안 아픈 것도 아니고 지금 염증있는지 확실한 것도 아니라고. 2-3일 먹어보고 계속 아프면 그때 다시 하면 된다고.


크라운을 뚫어서 신경치료는 되나요?

아니요 저희는 그건 안 해요. 조금 지나면 크라운이 약해서 갈라지거든요.

그럼 시간이 오늘은 안돼서 다음 주에 다시 예약하고 오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만이천 원입니다.



슬쩍 찍은 사진을 아빠에게 보냈더니 이가 좀 들떴다며 조금 갈아내서 위아래 교합을 맞추면 안 아플 거라고 하신다. 약국에서 소염제를 샀다. 집 가서 먹어야지. 먹었더니 괜찮아지는 것 같기도하다.



근데 크라운만 갈아주는 치과가 있으려나.

고민이다. 어디를 가야 하나.

근데 이게 맞나? 앞으로는 또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제까지 가본 적 없는 치과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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