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첫 승, 첫 행복

2024년 3월 24일, 한화 vs LG

by 김원

어제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 오늘 일어나기도 한다. 그게 야구의 매력이다.




어제 충격적인 패배에 심각한 두통과 함께 눈을 떴다. 어제의 설레는 아침과는 달리 무거운 통증이 뒷목을 뻐근하게 짓눌렀다. 오늘은 이길 수 있을까? 어제보다 나은 점이 뭐지? 그래도 내 머리는 무의식중에 야구장을 가기 위해 몇 시에 집을 나서야 하는지 계산하고 있었다. 애초에 가지 않는 건 선택지에 없었다.



가방을 챙겼다. 어제와 특별히 달라진 점은 없다. 하지만 유니폼은 바꿨다. 어제 채은성 선수 유니폼을 입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으니, 그대로 입고 갈 수는 없다. 대신 아직까지 안타를 신고하지 못한 노시환 선수의 유니폼을 꺼냈다. 잘 부탁한다 유니폼아. 오늘은 꼭 승리를 가져다 줘.


어제와 달리 느즈막히 집을 나섰다. 작년과 달리 짐검사를 하지 않으니 입장줄이 줄어드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진 걸 확인했다. 오늘은 경기 시작 한 시간 전쯤 가도 넉넉할 것 같았다. 게다가 오늘은 표 한 장이 남아서 팬카페에서 동행을 구해 같이 가는 날이었다. 동행 분은 천안에서 오신다고 했다. 미리 가서 표를 뽑아놓을 생각이었다.



잠실 야구장에 도착하니 괜히 엘지 트윈스 팬이 더 많아 보였다. 어제 충격적인 패배의 여파로 표를 취소한 한화 이글스 팬들도 많겠지. 그래도 야구장에 찾아온 이글스 팬들을 보니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졌다. 당신들도 어제의 충격을 딛고 다시 오셨군요. 반갑습니다. 저도 오늘은 꼭 이겼으면 좋겠네요. 마음으로 인사를 건네고 표를 뽑아 동행을 만나 경기장으로 입장했다.


오늘은 응원석은 아니지만 네이비석 1열에 앉았다. 네이비석은 오렌지석(응원석) 바로 뒷블록으로, 응원석 못지 않게 열기가 굉장히 뜨거운 곳이다. 잠실 야구장의 좌석별 시야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는 나중에 별도로 글을 써보아야 겠다.


어쨌든, 경기가 시작되었다. 페냐는 류현진에 가려진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작년 한화의 마운드를 그나마 굳건하게 지켜준 든든한 외국인 1선발이었다. 봄에는 꽃가루 알레르기로 약간의 부침을 겪곤 했지만, 타자의 헛스윙을 이끄는 체인지업이 명품인 투수다. 페냐는 1선발의 명성에 걸맞게 어제의 악몽을 씻어내려줬다. 리그 최고의 강타선인 엘지 트윈스를 상대로 깔끔한 투구를 이어줬다.


느낌이 좋다. 오늘 페냐의 공 상태가 굉장히 좋아보인다. 상대 투수 임찬규의 페이스도 좋지만, 타격감만 끌어올려준다면 승리의 가능성이 보인다. 경기가 팽팽한 줄다리기처럼 이어지던 찰나, 엘지 트윈스의 첫 득점이 나왔다. 먼저 선취점을 가져오는 것과 역전을 해야하는 것의 부담감을 갖고 타석에 들어서는 건 다를텐데. 걱정이 앞섰지만 경기는 계속되었다.


페라자가 홈런을 치고 그라운드를 한 바퀴 돌고 있다.


그 때,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타자가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요나단 페라자. 맞다, 다른 팀은 이런 상황에 외국인이 홈런도 쳐줬었지. 우리한테 없었던 게 바로 그거였지. 페라자는 시원한 스윙으로 동점 홈런을 쏘아올렸다. 어제의 골때리던 경기 결과는 다 잊을 수 있었다. 야구 직관의 묘미는 역시 홈런이다. 두 눈으로 시원하게 뻗어가는 타구를 보고, 일제히 함성을 지르는 관중 속 하나가 되는 기분은 그 어느 짜릿함과도 견줄 수 없다.


이어진 문현빈의 적시타로 한화는 리드를 이어갔다. 어제의 실책으로 잠깐 미웠는데, 오늘은 곧잘 자기 역할을 해내는구나. 하지만 오늘은 페라자 얘기를 좀 더 하려고 한다. 페라자는 다음 타석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뽐냈다. 어깨가 빠질듯이 휘두른 배트에 공이 맞았고, 공은 멈출 줄 모르고 날아갔다. 그리고 또 홈런. 연타석 홈런이다. 우리, 역전했다. 어제 경기부터 처음으로 우리가 리드하는 상황을 갖게 되었다.


아슬아슬한 1점, 2점차 리드를 가져가고 있었다. 사실 이기고 있지만 이기고 있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엘지 타선에게 1점, 2점은 점수차도 아닐 것 같았다. 그 때 리더 채은성이 나타났다. 최강한화 채은성 워어어~... 어어? 배트에 강하게 맞은 하얀 야구공이 외야에 수직으로 뻗은 노란 폴대를 강하게 맞췄다. 홈런이다! 그것도 주자가 두 명이나 있을 때. 3점 홈런이다! 드디어! 드디어 한화는 큰 점수차로 리드를 가져갈 수 있었다.


어제 맞은편에서 들려오던 아파트가 얼마나 가슴 아팠나. 오늘은 우리가 아파트를 부른다. 으쌰라 으쌰! 으쌰라 으쌰! 이어 행복송도 부른다. 나는~ 행복합니다~ 한화라서 행복합니다~



그렇게 오늘은 승리했다. 어젯밤, 아니 오늘 아침까지도 생각지도 못한 홈런 세 개와 함께. 사람 일이 어떻게 될 줄 모르는 것처럼, 야구도 어떻게 될 줄 모른다. 어제까지 3구 이내 내야 땅볼로 고개를 돌리던 타자들이 오늘은 끈질기게 투수를 괴롭혔고, 포기하지 않았다. 특히 하주석의 17구 승부는 오늘은 다를 것이라는 팀의 의지를 직접 보여주는 듯 했다.


기분좋게 잠실 야구장을 떠나 집에 돌아왔다. 이기는 날엔 자랑스럽게 야구 유니폼도 벗지 않고 지하철을 타고 돌아온다. 참, 야구팬들에게 일요일 경기 결과는 특히 중요하다. 월요일은 야구가 없는 날이기 때문에, 일요일 결과가 월요일의 기분에도 영향을 크게 미치기 때문이다. 토요일엔 누구보다 기분 나쁘게 졌지만, 일요일엔 기분 좋게 승리해 결국 이틀이나 기분이 좋은 가성비 승리를 챙겼다.


아, 오늘 밤엔 기분 좋게 하이라이트를 돌려보면서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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