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on a Detour: Words on Details
누구나 자기만의 개념이 있다. 남에겐 통하지 않을 말인데도 내 머릿속에서만은 완벽하게 통하는 개념들. 이를테면 나는 종종 '이건 참 ○○○(지인 이름)틱한데' 라거나, '이것 참 을지로 4가 같은 상황이군'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정작 말로 설명해 보라고 하면 잘 못하겠지만, 나만은 완벽하게 이해하는 개념들이다. '아저씨의 말하기'라는 것도 그중 하나인데 굳이 설명을 해야 한다면 대화의 주제나 큰 맥락과는 동떨어진 디테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화법이라고나 할까. 이 '아저씨의 말하기'란 내 아버지에게서 비롯되었다.
예를 들면 '아버지 친구들은 이제 모두 손주까지 봤으니 너도 어서 정신 차리고 결혼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라'라는 말씀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최근에 결혼했다는 아버지 친구분의 아들이 어느 회사를 다니고 있는지 - 이야기의 주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디테일 - 을 굳이 모두 생각해내셔야만 하는 것이다.
"걔가 어느 회사를 다닌댔더라. L그룹의 상사였던가, 화학이었던가. 화학인 것 같긴 한데, 거기 □□동에 있는 회사가 어디냐? 상사냐 화학이냐"
이런 디테일을 찾으시느라 이야기가 도저히 갈피를 찾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이 대화는 결국 내게 '듣기 싫은 잔소리'로 귀결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늘어지는 것은 더 참기 힘들어서.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라고 얼른 결론에 다다르시길 채근하고서는, 스스로 함정에 장렬히 몸을 던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아버지의 이런 대화법은 나이가 드시면서 - 아저씨가 되신 지 더 오래될수록 - 심해지는 것을 보면, '아저씨의 말하기'라는 명명은 꽤 그럴듯하지 않은가?
이런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곳은 '회사'라는 공간이다. 아무래도 회사라는 사회는 아저씨의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은 탓일까? 단지 점심을 먹거나, 회식을 하는 자리뿐만 아니라 회의석상에서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우리 모두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기에 우리의 시급은 월급 나누기 사무실에서의 체류시간일 텐데, 그 정도는 낭비해도 된다는 듯 회의 주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디테일의 끝을 찾아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A 부장 : 이번 케이스는 며칠 전에 있었던 그 이슈와 동일하다고. 그게 언제였지? 화요일이었던가, 수요일이었던가, 그 왜 D 과장과 미팅했던 것 말이야. 언제였지?
B 차장 : 회의 끝나고 중국집에서 식사하셨던 날 아닌가요? 그럼 화요일일 텐데.
A 부장 : 아니, 중국집 갔던 날은 다른 미팅이고, D 과장과는 같이 식사 안 했던 것 같은데.
B 차장: 중국집 갔던 건 E 차장 건이었나요?
C 대리 : 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스케쥴러를 뒤적거리며)
나 : (노트에 '이들은 왜 이렇게 진지한 것일까?'라고 쓰고 있음)
왜 아저씨들은 꼭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 알 수 없다. 나 혼자만의 개념이기에 관련된 연구나 기사 같은 것도 없다. 어쩌면 완벽을 요구하는 한국사회에서 적응해야 했던 아저씨들의 슬픈 직업병일 수도,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권위 내세우는 한 방법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저 그런 디테일을 찾아가는 것이 그들에게는 재미 그 자체일 수도. 하지만, 단 하나 확실한 건 나는 절대로 그들처럼 말하고 싶지 않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고, 가진 거나 이룬 것도 많지 않지만 어느새 곧 민방위 훈련마저 끝나갈 나이가 되었다. 누가 내게 아저씨라고 불리는 것에 익숙해져야 할 나이에 나는 몇 번이고 이렇게 소망한다. 아저씨의 외모, 아저씨의 몸매, 아저씨의 유머 코드가 내게 자연스럽게 배어나도 좋으니, 제발 아저씨의 말하기만은 갖지 않기를.
그러고 문득 든 생각. 아버지의 말씀이나 회사에서의 회의 내용에 집중하지 않고 화법 따위에 집착해서는 굳이 이런 글까지 적어내고 있는 걸 보면, 어쩌면 이건 혹시 '아저씨의 생각법' 혹은 '아저씨의 글쓰기'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