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비티

Gravity

by soormj

두 살 터울인 동생과 대화를 하다 보면 문득 세대차이 같은 것을 느끼는 지점들이 있다. 한 지붕 아래서 유년시절을 함께 지냈고, 이십 대 중후반쯤에도 2년쯤 정도 같이 산 적이 있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동생과 나는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면서 성장해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세대' 안에서 사소한 취향 차이 정도로 갈라져 결국엔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믿어왔는데, 그런 동생이 갑자기 낯설다. 오히려 나보다 네다섯 살이 많은 80년대 초반 출생 지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두 살 터울의 동생에게 가지는 것보다 같은 세대로서의 유대감이 더 진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어쩌면, 80년대 중반쯤 어떤 사건이 발생했고, 그 전의 5년과 그 뒤의 2년은 다른 속도로 시간이 흘렀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1985년에 개봉한 영화 '빽투더퓨처'가 사실은 실화였고, 시간의 흐름을 묘하게 뒤틀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언젠가 한 후배와 음악을 들으며 '샴푸의 요정'이라는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90년생인 이 친구는 이 곡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이 곡이 발표되던 1990년, 고작 다섯 살인 나에게 '네모난 화면 헤치며 다가와 은빛의 환상 심어준 그녀'가 있었을 리는 만무하지만, 내 10대 시절에 자주 듣던 곡이라 지금도 가끔 찾아 듣는 것을 보면, 이 곡의 발표시점인 1990년과 내가 10대이던 2000년대의 어느 지점까지 시간이 왜곡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후배와 나는 1990년, 그리고 2000년대를 각각 살아갔지만, 시간은 각기 다른 속도로 흘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술을 마시다가 좋아하는 영화 이야기를 하게 되면 나는 늘 주성치 이야기를 꺼낸다. '서유쌍기'를 보았냐고 물으며 시작된 대화의 흐름은 늘 다음과 같이 흘러간다.


서유기는 주성치 유니버스의 정수이다. 특히 영화 후반부의 약 20분 동안의 시퀀스는 마블 '엔드게임'의 그것에 견준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 나. 상대방은 나의 극찬에 감동받은 것인지, 혹은 더 이상 술을 마실 때마다 '서유쌍기를 봐야 한다'라는 나의 말을 듣기 싫은 것인지 이 두 편의 영화를 보려고 시도하고, 실패한다. 1편인 '월광보합'도 채 마치지 못한 채로. 그다음의 술자리는 나의 취향에 대한 불신임으로 비롯된 약식 청문회가 열린다. 나는 "그래, 그건 그 시절 감성으로 보아야 명작일 수밖에 없긴 해"라며 슬쩍 발을 빼고는, 집에서 홀로 서유기 영화를 연달아 보며 "이 재미를 왜 모르는 거야?"라고 의아해하는 것이 내 인생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루틴이다.


술자리 영화의 결말이 새드엔딩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왜 술을 마실 때마다 주성치 이야기를 꺼내고 그의 영화를 추천하는 걸까? 왜 나의 대화는 늘 같은 방향으로 이끌리는 걸까?


거대한 질량을 가진 물체는 그 중력이 주위의 시공간을 왜곡시킨다고 한다. 중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그래서 주성치 영화가 내 10대에 차지했던 질량은 거대한 중력을 만들어내었고, 그 영향 아래에서 살아가는 나의 감성은 아직도 10대 시절에서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같은 이유에서 나는 2025년이 된 지금에도 여전히 '샴푸의 요정'의, 윤종신의, 호밀밭의 파수꾼과 스타워즈 오리지널 트릴로지의, 중경삼림의 시간 속에서 유영한다. 그때의 사람들, 그때의 나, 그 시절의 글귀들과 음악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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