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낼러티

homo sAPIens

by soormj

내 첫 차는 오백만 원짜리 중고차였다. 08년식 아반떼 HD. 자동차에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라 첫 차를 타고 시내에 나가보고서야 알게 된 사실은 이 세상에 아반떼 HD는 너무나도 많다. 신호대기 중 주위를 둘러보면 내 앞의 차도, 그 앞의 차도 아반떼다. 그것도 나와 꼭 같은 색상의.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무언가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온 세상이 그걸로 도배된다. 아반떼를 국가에서 지급해 주는 내가 모르는 그런 제도가 있었나 싶었을 정도로, 교통 정체는 아반떼와 아반떼로 이루어진다. 또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우리나라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산책이라도 나가면 거리는 사람 반, 강아지 반인 데다가, 우리나라 출산율이 역대 최저라는데, 거리의 수많은 귀여운 아이들은 대체 모두 어디 국적인 걸까?


창업 아이템을 생각해 냈다면, 그 비즈니스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고 있고, 똑같은 아이템으로 이미 망해버린 사람이 수없이 많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를 떠올리며, 나는 이제 막 자전거에 관심이 생겼을 뿐인데, 회사 앞 자전거 거치대는 빈자리를 찾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한다.


조금은 서글퍼진다. 내가 좋아하게 된 것들을 이미 좋아하고 있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 이미 내가 생각했던 것들은 이미 책으로도 나와있고, 노래로도 불린다. 학교를 졸업한 지 조금 되어서 확실하진 않지만 이미 시험문제로 출제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동차로만 출퇴근하던 내 일상에 자전거란 관심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금은 특별하고 새로운 사건인데, 이렇게 보니 전혀 특별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보통의 일일 뿐이다.


나라는 사람의 오리지낼러티는 과연 존재하나 싶다. 그저 은색의 아반떼를 첫 차로 가졌던 수많은 사람 중 한 명, 자전거에 관심이 있는 사람 중의 한 명, 내향적인 성격을 가진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일 뿐인데 말이다. 어쩌면 기계나 다를 바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나라는 존재는 그저 이진법의 결과물 - 강아지와 고양이 중 어느 쪽을 더 좋아하느냐, 축구와 야구 어느 스포츠의 팬인가, 리얼리티 프로그램 출연자의 논란이 될 만한 발언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느냐, 대수롭지 않게 넘기느냐와 같은 수많은 선택 혹은 선호의 조합일 뿐이고. 나는 그 조합의 수많은 경우의 수 중 하나로서 존재하는 것 같다.


언젠가.

스카이넷이든, 매트릭스든 그 누가 되었든 그때가 된다면 내 말 좀 들어주세요.

나 사실 그대들과 크게 다르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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