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 100

좋지(good) 않아서 좋았던(good)

by soormj

이십 대 초반엔 종종 누군가의 자취방에 대여섯이 모이고는 했다. 한참 동안 술을 마시다 보면 이야깃거리는 떨어지고, 대화는 소강상태에 이르렀다. 떠들썩했던 분위기는 한층 가라앉고, 우리는 마치 홀로 술을 취해 혼잣말을 하듯 이야기를 했다. 대화라고 부르긴 어려웠다. 각자의 입에서 출발한 단어들은 그 누구의 귀에도 가 닿지 않고 공중을 떠돌았다. 그날 밤, 노래방에서도 마이크를 잘 쥐지 않던 한 친구가, 취기에 배경처럼 흘러나오던 음악에 흥얼거리듯 자신의 목소리를 얹었다. 누구에게도 특별하다고 할 수 없이 일상적이었던 그날 밤, 그리고 아무도 (심지어 노래를 부르던 당사자조차) 기억하지 못할 노랫소리.


거의 이십 년이나 지난 오늘도 그 장면을 떠올리자면, 왠지 모를 뭉클함과 함께 내 귀에서 그 노랫소리가 맴돈다. 그 친구는 자신조차 기억하지 못할 그 짧은 흥얼거림을, 지금은 연락도 잘하지 않는, 완전 남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내가 무려 이십 년 동안 곱씹고 있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까? 결코 노래를 잘 부른다고는 하지 못 할, 아니 오히려 음치에 가까웠던 그 목소리는 흥얼거림임에도 힘없이 떨렸고, 묘하게 음정을 빗겨나갔지만, 오히려 아무런 기교나 꾸밈이 없었기에 노랫말 하나하나가 날 것으로 날아들었다. 사실 그 친구는 그즈음 어떤 일을 겪고 있었고, 그 노래의 가사는 아주 미묘하게 - 당사자조차 의식하지 못할 만큼 조심스럽게 - 그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아마 그래서 그 노래를 무의식 중에 따라 부르게 된 것이겠지.) 우연히 훔쳐 듣게 된 당사자도 모르는 사이 시작된 고해성사는 이십 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귓가에 맴돈다.


세상은 모두에게 완전함을 추구하라 하고, 발전을 요구한다. 과연 모든 사람이 그래야 하고, 애초에 그게 가능할까? 도무지 삼각함수를 이해할 수 없었던 나에게 (내가 결코 가 닿을 수 없는) 과연 100점이 ‘만점’일까? 객관적으로 보면 60점도 후했을 그 친구의 노랫소리가, 지금껏 그 어떤 노래보다도 더 기억에 오래 남아 있다면, 어설프고 불완전한 것이 완벽한 것을 압도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어린아이의 어설픈 그림이나, 초보운전이었기에 더 기억에 남는 이십 대 초반 아버지 차를 빌렸던 여행. 꼴은 엉망이지만 그래서 더 간절함이 느껴지는 사람의 모습에 감동을 느끼는 것을 보면 어설프고 불완전한 것에도 어떤 미학이 있다고 느낀다.


그러니까,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는 것도 노래를 부르는 한 가지 방식이라고 믿는다. 잘하지 못하는 것에 굳이 열등감이나 부끄러움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잘하는(혹은 그렇게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호흡마저 조심스러웠던 나는 숨이 탁 트인다. 무언가를 잘하지 못하는 것도 그걸 하는 한 가지 방식이니까. 내가 머리를 잘 만지지 못하는 것도 헤어스타일의 한 가지 방식인 것이고, 옷을 잘 못 입는 것도 패션스타일의 한 종류인 것이다. 물론 수업을 빼먹고 대낮부터 술을 마시는 것도 학교를 다니는 한 방식입니다 - 가 되어버려서 곤란을 겪기도 했지만.


만약 먼 훗날 누군가 나를 인터뷰하며 ‘어떤 스타일로 옷을 입으세요?’하고 질문한다면 나는 ‘잘 못 입는 스타일로 다니는 편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인터뷰어의 메모장을 슬쩍 보며 속으로 생각하겠지. ‘악필도 글씨를 쓰는 한 가지 방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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